아버지는 롯데 1군버스 운전, 아들은 3년차 신인

스무살 막내아들이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다. 온몸이 찌릿찌릿, 긴장의 순간. 쿵쾅쿵쾅, 심장 박동이 평소보다 2배는 빨라진 것 같다.

전광판에 '손용석'이란 이름 석자가 보였다. 떨려서 아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야구장 관중석 한 귀퉁이에 앉아 고개를 떨군 채 팬들의 함성소리만 듣는다. 롯데팬이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면 아들이 안타를 친 거고, 상대팀 팬의 환호성이 들리면 실패한 거다.

용석이가 삼진이나 범타로 물러나는 날 롯데가 지면 괜히 '내 아들 탓'인 것만 같다. 감독이나 선수들 얼굴 보기도 미안하다.

부산 사직구장 더그아웃에서 롯데에 떠오르는 샛별 손용석(왼쪽)이 17년째 운전해오신 아버지와 함께 다정하게 웃고 있다. 부산/임현주기자

한번은 아들이 멋지게 2루타를 날렸다. 흥분된 마음을 감출 길 없어 경기후 더그아웃에서 아들 머리를 쓰다듬어줬는데 '부산 갈매기' 열성팬이 그 모습을 보고 구단 홈페이지에 항의 글을 올렸다. " 기사님, 아무리 아들과 한 곳에서 일해도 그렇지 어떻게 우리 구단 프로선수 머리를 함부로 만지세요. " 그 후론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아버지 손경구씨(52)는 올해로 17년째 롯데야구단 1군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아들보다 먼저 롯데에 몸담고 일했는데, 아들이 들어온 후 불편해진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경기 후 선수들이 버스에 타면 " 수고했습니다 " 라고 인사를 하는데 아들이 탈 때면 존댓말로 인사하기도 어색하고, " 수고했다 " 고 말하기도 이상해서 아예 눈인사만 한다.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 코너에서 " 밥 묵자 " 로 일관하는 부자처럼 대화가 없다.

5살 꼬마 용석이를 사직구장에 데리고 다니며 야구가 뭔지 눈을 뜨게 해준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아들이 야구선수로 성장해 지난해 롯데에 1차 지명을 받았다. 작년에는 1군에 머문 날이 17일밖에 안됐는데 올해는 벌써 50일을 넘겼다. 아직은 '대타'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가슴이 여간 뿌듯한 게 아니다.

지난 16일 대전 한화전, 5-6으로 뒤진 9회초 2사 1·2루에서 이승화 대신 타석에 들어선 아들이 특급 마무리투수 구대성을 상대로 2타점 역전 결승타를 날렸을 땐 하늘을 날듯 기뻤다. 세상 부러운 게 없었다. 넉넉하지 않은 월급으로 힘들게 뒷바라지해온 보람이랄까.

애지중지 키운 아들에게 가끔 " 누구는 구장 불 다 꺼져도 혼자 남아 스윙연습하더라 " 고 말하면 잔소리 듣기 싫다고 손사래를 친다. 한번은 공필성 코치가 상담할 게 있다며 조용히 불렀다. " 용석이가 스트레스 받지 않게 야구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달라 " 는 것이다. 가슴 한 구석이 싸늘해졌다. 서운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용석이는 더 이상 '품안의 자식'이 아니기에….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은 알까. 손용석은 말한다. " 원래 '부산 싸나이'들은 말이 필요 없다 " 면서 " 하루 빨리 주전으로 뛸 수 있도록 실력을 쌓는 게 아버지에게 보답하는 길 " 이라고. 프로야구 시즌 동안 8개 구단 중 최장거리인 1만5000㎞를 달리는 아버지를 보면서 아들도 늘 버스 안에서 '아버지 눈이 피로하시진 않나' 걱정하고 있었다고.

21일 사직구장 SK전이 비 때문에 취소되자 아들은 곧바로 아버지 버스에 올라탔다. 아버지는 5시간 넘게 빗길을 뚫고 수원으로 달렸다.

〈부산|글·사진 임현주기자 korear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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