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인터넷을 좀 줄였더니, 어느새 8개구단 용병 영입 작업이 마무리되었더군요..
롯데는 코르테스 대신 존 애킨스라는 용병을 영입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투구 동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요..
제 능력으로는 동영상 링크를 바로 걸 수 없어서 주소만 가지고 왔습니다..


일단 경기 동영상을 본 후의 소감은...살짝 불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_-;;
이 선수..특히나 구속은 작년의 코르테스와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만,
직구에서 느껴지는 힘은 살짝 부족하지 않나 싶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나 이건 국내에서 직접 던지는 걸 보고 판단해야 할 것 같다는...)

그리고 변화구 구사 능력은 확실히 코르테스보다는 한 수 위인 것은 확실한 듯 합니다..
작년에 코르테스 후반기에 올라와서 체인지업이 주무기라고 했는데,
언제 보여주나 기다리다가 결국 포스트시즌 갔고, 직구로 승부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얻어맞았을 뿐이고!! -_-;;

문제점은 역시나 제구력이 불안하다는 것..

개인적으로 마무리 투수의 조건으로 생각하는 게,
일단은 타자를 힘으로 압도할 수 있는 묵직하고 빠른 직구..
그리고 거기에 확실한 변화구 하나..
그리고 일정 수준 이상의 제구력...
(이거 다 갖추면 뭐..누가 30세이브 이상 못하겠습니까만..-_-;;)

그래도 쓰고 보니 2/3는 갖춘 셈이군요..
아로요 코치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으니, 일단은 믿고 기다려봐야겠습니다..
극성스런 롯데 팬들의 특성상 초반 3-5경기 정도가 관건이 될 듯 하네요..

나머지 기사 아래에 첨부합니다..^-^

덧..영상 및 기사의 출처는 갈매기마당입니다..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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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 시즌 롯데 최고의 선수들

2008/11/05 11:44
단일 시즌 롯데 최고의 선수들

*단일시즌 타격부문 1.단일시즌 최고타율-마해영(1999년) .372


...99년은 롯데 역사상 가장 완벽한 클린업 트리오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시즌입니다. 박정태-호세-마해영으로 이어지는 3-4-5번은 정교함과 파워의 밸런스에서 당대 어떤 클린업 트리오와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었던 선수들이었죠. 특히 마해영은 99시즌에 3할 7푼 2리로 1994년 이종범의 .393 이후 최고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했고,그 이후 아직까지 단일시즌에 3할 7푼대를 기록하는 타자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마해영의 .372라는 타율은 KBO 역대 순위로는 5위 이며, 그 이상의 타율을 찍어낸 선수는 백인천,이종범,장효조 단 3명에 불과합니다.

2.단일시즌 최다안타-마해영(1999년) 132경기 187안타

...타율에 이어 최다안타 역시 99년의 마해영이 차지했습니다. 마해영 개인으로서도 이 시즌이 커리어 하이였으며, 용병타자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타고투저가 시작된 해이기도 했죠.

3.단일시즌 최다 득점-마해영(1999년) 111득점

...이 시즌의 마해영은 도루를 제외한 거의 공격 전 부분에서 완벽에 가까운 해였습니다. 그의 커리어에서 유일하게 100득점이 넘긴 해였으며, 이승엽,이병규에 이어 시즌 3위를 기록했던 때였죠. 공교롭게도 현재 KBO 단일시즌 최다 득점이 이 시즌에 세워지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로 이승엽이 세운 128 득점입니다. 마해영은 롯데역사상 유일하게 100득점을 넘긴 선수로 기억되는데, 2위는 김응국이 같은 해에 세운 98득점입니다.

4.단일시즌 최대 출루율-호세(2001년) .503

...롯데가 낳은 최고의 용병 펠릭스 호세의 한국무대 두번째 시즌입니다. 2001년은 괴물용병 호세에 대한 각 구단의 엄청난 견제가 있었던 시즌으로, 그로 인해 호세는 출루율 5할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참고로 프로야구 26시즌 동안 단일시즌 출루율 5할을 기록한 선수는 호세가 유일하며,2위는 백인천이 원년에 기록한 .497입니다.

5.단일시즌 최다볼넷-호세(2001년) 127개

...이 기록 역시도 역대 KBO 최다입니다.2위는 심정수가 2003년에 세운 124개입니다. 6.단일시즌 최고 장타율-호세(2001년) .695

...팀내에서는 2위가 99년 마해영의 .672이고 KBO 전체로 따지면 호세의 기록은 역대 5위에 랭크되어있습니다.1위는 82 백인천의 .740입니다. 7.단일시즌 최고 OPS-호세(2001) 1.198

...2001년의 호세는 그야말로 리그를 지배하는 타자였습니다.최종 OPS는 1.198로 롯데에서는 당연히 1위이고 KBO 역대로 따져도 2위입니다. 참고로 역대 1위는 82년 백인천이 세운 1.237이며,지금까지 OPS가 1.2가 넘었던 시즌을 기록한 선수는 백인천이 유일합니다. 8.단일시즌 최다 홈런-호세(1999년,2001년) 36개

...역대로 롯데는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들과는 인연이 그다지 없던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99년 호세는 한국무대 첫 해에 36개의 홈런을 때려내면서 35개를 때려낸 팀동료 마해영(마해영은 롯데 단일시즌 최다홈런 2위)과 함께 리그홈런순위 상위권에 오르면서, 롯데가 소총부대 이미지를 탈피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2001년에도 36개를 때려냄으로서 롯데 단일시즌 최다 홈런 타이를 이루게 됩니다. 호세의 36홈런은 KBO 역대로는 공동 19위에 해당합니다. 당시 리그 1위는 아시아 홈런 기록을 경신한 이승엽의 56개입니다. 9.단일시즌 최다 타점-호세(1999년) 122타점

...단일시즌 누적기록에 관해서는 롯데에서 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1999년은 122타점으로 그 해에 이승엽의 123타점에 단 1타점이 뒤져 2위를 차지했으며, 그로인해 호세의 122타점은 KBO 통산으로 따져보면 6위에 해당합니다. 1위는 백인천 이후 가장 괴물같은 시즌이라고 평가받는 이승엽이 2003시즌에 세운 144타점 입니다.

10.단일시즌 최다 2루타-박정태(1992년) 43개

...92년 롯데는 주전라인업 중 5명이 3할 이상을 쳤던 소총타선의 극을 보여줬던 시즌입니다.그리고 그 중심에 롯데 역사상 가장 뛰어난 2루수였던 박정태가 있었습니다.
박정태는 92년에 43개의 2루타를 침으로서 롯데의 단일시즌 최다 2루타이자, KBO 역대 단일시즌 최다 2루타의 기록도 세웠습니다. 참고로 이 부분은 박정태 외에도 2명의 선수가 공동 1위인데, 그들은 바로 99년 이병규와 2003년 이종범입니다.

11.단일시즌 최다 3루타-이종운(1992년) 14개

...박정태,김응국,김민호와 같은 화려함은 없었지만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 정교한 타격을 동시에 갖추고 있던 92년 우승의 또다른 주역이었던 우익수 이종운입니다. 이종운은 이 해 14개의 3루타를 쳐내면서 역대 1위에 올라와있으며, 동시에 KBO 전체에서도 1위에 올라와 있습니다. 2위는 같은해 팀동료 김응국이 세운 12개이며, 가장 최근에는 지난시즌 두산의 이종욱이 12개를 쳐냄으로서 이 부분 공동 2위에 올라 있습니다.

12.단일시즌 최다 도루-전준호(1993년) 75개

...롯데 팀 역사상 전체를 통틀어서도 전준호만큼 뛰어난 리드오프는 없었으며, 아니 그것은 KBO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전준호는 프로 3년차인 1993년에 75개의 도루를 성공시킴으로서 롯데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 도루를 달성하며 도루왕을 차지합니다. 2위는 단 2개 차이로 아깝게 1위를 놓친 1993년 이종범의 73도루 였으며, 이에 자극을 받은 탓인지 이종범은 이듬해인 94년 84개의 도루로 당당히 KBO 역대 단일시즌 최다 도루를 기록하게 됩니다. 전준호의 75개는 한국프로야구 전체로 봐서는 2위이고, 롯데 내에서는 95년 69개로 단일시즌 2위의 기록도 그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후 롯데의 최다 도루는 2004년 김주찬이 세운 44개입니다. *단일시즌 투수부문



1.단일시즌 최저방어율:최동원(1986년) 1.55

...롯데가 낳은 불세출의 투수...선동렬과 비견될 수 있는 유일한 선발투수인 최동원은 비록 롯데에서 6시즌밖에 뛰지 못했지만 그 기간동안 너무나도 강렬한 기록과 인상을 남긴 탓에 지금도 롯데를 대표하는 투수하면 제일 먼저 최동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방어율 1.55는 KBO 역대로 따지면 고작(?) 8위에 그치고 있지만, 그의 엄청난 소화 이닝을 감안해 볼때 정말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규정이닝이상 투구한 선수 중에서 86 최동원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한 투수는 아무도 없으며, 유일하게 근접한 이닝 수를 기록한 선수는 바로 같은 해 선동렬이었고, 그는 이 해에 262.2이닝을 투구하면서 방어율 0.99로서 0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참고로 역대 KBO에서 활동한 투수 중 0점대 방어율이 나온 적은 3시즌인데 모두 선동렬이 달성 했습니다. 선동렬은 1993년 마무리투수로 활약, 126.1이닝을 던지면서 0.78의 방어율을 기록했고, 최초로 10승-30세이브를 기록한 투수이기도 합니다. 롯데 내에서는 최동원 이후 1992년 고졸슈퍼루키 염종석이 2.33이라는 역대 3위에 해당하는 최저방어율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2.단일시즌 최다승:최동원(1984년) 27승

...84년은 롯데팬들이라면 절대로 잊지 못할 시즌이 될 것입니다.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갔고, 당시 최강이었던 김시진-김일융의 원투펀치를 이겨내고 최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영광의 해 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시리즈 4승'의 신화 최동원이 있었습니다. 최동원은 84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27승을 따냈고,2위 김시진을 8승 차이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다승왕을 차지합니다. 84 최동원의 27승은 83년 장명부가 세운 30승에 이은 역대 단일시즌 최다승 2위이며, 또한 그는 롯데역사상 처음이로 20승을 차지한 투수로 기록됩니다. 그 후로는 아직까지 롯데에서 시즌 20승 투수는 단 한번도 나온 적이 없습니다.

3.단일시즌 최다이닝:최동원(1984년) 284.2이닝

...1980년대는 지금처럼 선발과 불펜의 뚜렷한 보직 구분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만큼 투수 분업화가 제대로 정착이 덜 되었던 시절이었죠. 오늘 선발투수로 뛰었던 선수가 이틀 뒤 구원투수로 나오는 일도 허다했고,초창기의 야구가 다 그랬듯이 한국 프로야구 역시도 선발투수는 엄청난 수의 공을 던지며 긴 이닝을 먹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최동원은 1984년 선발투수로는 단 20경기밖에 등판하지 않았지만,그 외에 구원투수로 31경기를 출장했고,284.2이닝이라는 지금 기준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엄청난 투구이닝을 기록합니다. 롯데 투수들 중 90년대 이후에 200이닝 이상을 투구한 투수는 주형광과 윤학길이 유일합니다.나머지는 전부 80년대에 던지던 투수들이었으며,그 기록의 대부분은 최동원에 의해 달성되었습니다. 284.2이닝은 같은 해 모든 투수를 통틀어 가장 많은 이닝수였으며, 역대로 따지면 60경기 등판 44선발이라는 말도 안되는 등판을 한 83년 장명부의 427.1이닝이 단일시즌 최다 이닝수입니다. 최동원의 기록은 역대 2위입니다.

4.단일시즌 최다탈삼진:최동원(1984년) 223개

...최동원이 이 해에 세운 탈삼진은 역대 KBO 단일시즌 최다탈삼진으로 아직까지 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그는 284.2이닝을 투구하며 223개의 탈삼진을 기록했고,팀내에서 역대 2위는 주형광이 96년에 세운 221개입니다.이 두 사람은 KBO 역대기록에서도 나란히 1,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0년대 이후에는 2001년 에르난데스(215),2006년 류현진(204) 두 선수만이 200탈삼진을 넘어섰습니다.

5.단일시즌 최저 WHIP:최동원(1985년) 0.94

...최동원은 85년 86년 2년 연속 0점대 WHIP을 기록한 유일한 롯데 투수이며, KBO 통산으로는 15위에 해당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부분에 있어서 선동렬은 다른 레전드들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데, 그는 그의 커리어에서 무려 8시즌이나 0점대 WHIP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1위는 선동렬이 93년에 기록한 0.53. 롯데 내에서는 최동원에 이어 92년 염종석이 1.01으로 3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6.단일시즌 최다 세이브:박동희(1994년) 31세이브

...롯데는 전통적으로 항상 뒷문이 불안한 팀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그나마 가장 솔리드하게 막아주었던 마무리 투수는 바로 94년의 '슈퍼베이비' 故 박동희 투수였습니다. 그는 롯데 팀 역사상 최초로 30세이브를 기록한 투수로 남아있으며, 그것은 현재까지도 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워낙 마무리 부재에 허덕이던 롯데였던 까닭에 KBO 역대기록으로는 17위에 해당될 뿐입니다, 이 부분 1위는 2006년 오승환이 세운 46세이브 입니다. 20개 이상 세이브를 기록했던 투수가 박동희를 비롯,강상수,카브레라 밖에 없다는 것은 그간 롯데의 마무리들이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또한번 확인시켜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7.단일시즌 최저 피안타율:박동희(1990년) .203

...박동희는 롯데의 원조 '와일드씽'으로서 엄청난 강속구에 비해 항상 컨트롤이 불안한 투수였습니다. 그렇기에 삼진도 많았고 아울러 볼넷도 많았던 투수였죠. 그리고 때로는 이런 불안한 컨트롤을 가진 투수들이 반대로 안타는 더 많이 맞지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1990년의 박동희는 이런 전형적인 모습의 투수였습니다. 145이닝을 투구하면서 볼넷을 무려 114개나 내줬지만 반대로 안타는 101개 밖에(?) 내주지 않은,'3자릿수 피안타-3자릿수 볼넷-3자릿수 삼진'을 기록한 유일한 롯데 투수로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역대 최저 피안타율은 93년 선동렬이 세운 .120이며,놀랍게도 이 기록은 126.1이닝을 투구하고 세운 기록입니다. (기록-statiz.co.kr)

(사진 - 롯데 자이언츠)

by 예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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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희 칼럼

[박동희의 Mail Bag] 롯데 정영기 2군 감독은 왜 해임됐나

기사입력 2008-10-21 15:42

정영기 롯데 전 2군 감독 해임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프로야구 사상 2군 감독의 해임이 이처럼 화제가 된 적은 없었다. 한편에선 "팬들이 구단의 인사권까지 개입하려고 한다"고 볼멘소리를 내고 다른 한편에선 "그만큼 야구계의 담론의 범위가 넓어진 게 아니냐"며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사진=롯데)

Q. 정영기 롯데 2군 감독이 해임되고 그 자리에 양상문 LG 투수코치가 영입됐습니다. 올시즌 2군 남부리그에서 2위와 16.5경기차로 우승을 거두고 많은 유망주를 발굴한 2군 감독을 해임한다는 게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정 전 감독이 펑고 도중 해임소식을 접했다고 하는군요. 여기다 해임 배경이 특정고교의 파벌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요. 코칭스태프 선임이 구단의 고유권한이라지만 유능한 감독을 이토록 무참히 교체하는 건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소문의 진상을 알고 싶습니다.                            - 정경화 외 130 명 -




 

“아이고, 이게 누구여. 잘 지냈어요.” 정영기 롯데 2군 감독이 휴대전화를 들며 환하게 웃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모 프런트 팀장이 전화를 건 참이었다.
“아, 네….” 그러나 상대의 대답은 영 밝지가 않았다. “저, 감독님 지금 어디십니까.”

정 감독은 이날 2군 훈련을 마친 뒤 귀가를 준비하던 참이었다. 준플레이오프가 끝난 후 1군 선수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지만 2군 선수들은 5일 훈련 뒤 2일을 쉬는 훈련패턴을 이어가고 있었다.

“감독님.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할 듯합니다.” 모 팀장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정 감독이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쳐다봤다. 오후 1시 5분이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다음해 재계약이 어려울 듯합니다. 구단 방침이 새 감독을 영입하자는 쪽입니다.”

모 팀장의 목소리가 귀를 솜으로 틀어막은 것처럼 정 감독에게 아득하게 들렸다. 2007년 강병철 전 감독의 천거로 롯데 2군 감독을 맡은 뒤 2시즌을 보낸 정 감독이었다. 부산 사직동의 자취방과 상동훈련장을 오가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낙이었던 그에게 해임통보는 청천벽력과 같았다.

“그래요? 어쩔 수 없지요. 알겠습니다.” 정 감독이 휴대전화의 종료버튼을 눌렀다. ‘원래 프로가 이런 게 아닌가.’ 정 감독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손으로 거칠게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정 전 감독의 체념과 달리 많은 롯데팬들과 일부 야구인들은 정 감독의 해임을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스포츠춘추>가 정 전 감독 해임을 둘러싸고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핵심 쟁점 3가지와 관련돼 집중 취재했다. 2군 남부리그에서 16.5경기 차로 1위를 차지한 팀의 감독이 해임의 대상이 된 이유와 구단 내 특정파벌과 관련된 소문 그리고 구단의 고유영역인 인사권과 관련된 이의들이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2군 독주의 빛 VS 그림자

6월 중순 부산 사직구장에서 사복차림의 정영기 당시 롯데 2군 감독을 만났다. “로이스터 감독께 보고 차 왔다”는 게 그의 사직구장 방문 이유였다. 정 전 감독의 손에 들려져 있는 A4지에 관심이 갔다.

정 전 감독은“로이스터 감독이 이해하기 편하시라고 2군 선수들을 미 마이너리그 팜 시스템처럼 트리플A, 더블A, 싱글A 3단계로 나눠 정리했다.”

정 전 감독은 그렇게 말한 뒤 “트리플A는 언제든 1군 무대에 투입될 수 있는 즉시전력감이고 더블A는 1, 2년 육성해 1군으로 올릴 선수들이다. 싱글A는 3, 4년을 내다보고 기초체력훈련부터 시작하는 루키들”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감독이 2군 선수들을 3단계로 정리한 이유는 로이스터 감독의 이해를 돕기 위함도 있지만 스카우트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정 전 감독은 과거 한화 스카우트 시절 이범호, 김태균 등 지금은 한화의 간판스타로 성장한 젊은 선수들을 직접 영입했다. 특히나 1999년 무명의 대구고 내야수 이범호를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로 지명하며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도박도 그런 도박이 없다”는 우려와 지적을 동시에 받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카우트한 선수 모두를 성공시키겠다고 마음먹어선 안 된다. 그러면 모두 실패한다. 개인의 능력과 잠재력에 맞춰 순차적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래서 롯데 2군 선수를 3단계로 나눠 로이스터 감독에게 보고했다.” 정 전 감독의 말이다.

승부사 정영기 2군 감독(사진=롯데)

로이스터 감독은 정 전 감독의 브리핑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이 정작 2군에 바란 건 육성보다는 즉시전력감의 공급이었다. “로이스터 감독은 마이너리그 베테랑 감독답게 신인선수 육성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2군에서 1군으로 바로 선수를 올릴 수 있도록 2군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 때문에 2군에선 보기 드문 5인 선발체제를 갖추도록 했고 투수들의 투구수 역시 자신이 직접 관리했다.” 롯데 모 코치의 설명이다.

로이스터 감독은 대개 2군 선발투수의 경우 경기당 70구, 불펜투수는 30구를 던지도록 했다. 1군 승격 시 적응도를 높이기 위한 사전포석이었다. 투구수는 월별로 조정했다. 모 코치의 설명을 계속 들어보자.

“선발투수 투구수는 4월 70, 5월 80, 6월부터는 90개로 늘어났다. 투수가 1회부터 난타를 당해도 정해진 투구수는 끝까지 지키도록 했다. 그런 까닭인지 2군 남부리그 투수들 가운데 김유신, 허준혁, 김휘곤, 이상화 등 롯데 투수 4명이 77이닝 이상씩을 던져 최다이닝 10위 안에 들었다.”

육성보다 즉시전력감을 배출하기 위한 투수운용은 1군뿐만 아니라 2군에서도 성적에 있어서만큼은 효과를 발휘했다. 올시즌 롯데는 2군 남부리그에서 55승 11무 24패로 2위 삼성에 16.5 경기차로 앞서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북부리그에서 각각 1, 2위에 오른 상무, LG와 함께  2군의 ‘빅3’로 통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모 팀의 관계자는 “롯데나 상무와 2군 경기를 치르면 워낙 팀 전력이 좋기 때문에 다른 팀들과 할 때보다 더 많이 긴장했다”며 “롯데는 흡사 1군 경기를 하는 것처럼 2군 경기를 치렀다”고 회상했다. 무슨 뜻일까.

“대개 2군은 자신에게 부여된 미션을 얼마나 잘 수행하는지에 주안점을 둔다. 포크볼을 시험하기로 했으면 연속해 포크볼만 던지는 식이다. 그러나 롯데 2군은 시험보다는 경기력 향상을 목표로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번 이닝엔 이 공을 이렇게 던져야지’하는 게 아니라 ‘이 이닝은 어떻게든 (타선을)막아야지’하는 식이었다.”

정 전 감독의 승부욕도 롯데 2군 우승에 한몫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정 전 감독은 부드러운 인상과는 달리 승부욕이 대단했다. 3연전 가운데 우리팀이 2연승을 하자 구단버스를 막으며 ‘내일은 우리가 이길 테니 기대하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말은 농담이었지만 눈빛은 진심이었다.”

정 전 감독도 자신의 유별난 승부욕을 인정한다. “경기 중 선수들을 독려하고 분발을 강조한 건 사실이다. 주위에서 보면 ‘2군에서까지 저럴 필요가 있나’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2군이라도 지는 것보단 이기는 게 낫지 않나.”

1군식 2군 마운드 운용과 1군식 경기운영 여기다 정 전 감독의 승부욕이 더해져 롯데는 2군 남부리그에서 시즌 내내 독주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2군 리그에서의 압도적인 승리가 정 전 감독에겐 독으로 작용했다.

롯데의 한 관계자는 “2군은 선수를 육성하는 곳이지 우승이 목적이 아니다”며 “정 전 감독이 즉시전력감 배출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육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랐던 게 사실”이라고 솔직한 평을 했다. 이 관계자는 한 예로“신고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줬으면 했는데 2군에서 그게 잘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뿐만 아니라 구단의 고위관계자 역시 정 전 감독이 “유망주 육성에 다소 미흡했던 점”을 해임 사유 가운데 하나로 들었다.

정 전 감독도 구단의 평가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는 자세다. “만약 구단에서 육성과 관련돼 의문을 제기한다면 부인하고 싶지 않다. 사실 2007년 강병철 전 감독이 나를 2군 감독으로 부른 건 1군 성적을 내기 위해서였다. 1군 승격이 가능한 선수들을 2군에서 잘 골라 준비시키는 게 내 역할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든다. 정 전 감독이 승리를 위해 유망주 육성은 뒤로 하고 당장 승리를 견인할 수 있는 1군급 선수들을 경기에 총동원했다면 모르지만 지금껏 그런 혐의를 입증할만한 구체적 사례는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수도권 모 팀의 2군 관계자는 “롯데 2군의 선전은 1군급 선수들이 아니라 유망주들의 맹활약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탐나는 선수들은 죄다 롯데 2군에 모여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덧붙여 “후반기 무리하면서 2, 3경기 차로 2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면 ‘저 감독 우승에 연연하네’라는 소릴 듣겠지만 16.5 경기차라면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2군 감독치고 우승을 좋아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대개 2군 감독은 리그 2, 3위를 가장 선호한다. 만약 2군 리그 우승이라도 하면 “누가 육성하랬지 우승하랬나”하는 비판에 시달려야하고 꼴찌를 하면 “도대체 한 게 뭐가 있냐”는 꾸지람을 듣기 때문이다.

정 전 감독이 이끄는 롯데 2군의 독주는 무엇보다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난데서 찾는 게 온당하다. 만약 그렇다면 정 전 감독은 육성을 등한 시 했다는 비판보다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게다가 ‘2군에서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했다’는 비판도 수정돼야 할 것이다.

수도권 모 팀 2군 관계자는 “이기는 경기를 통해 육성하는 게 더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만약 정 전 감독이 육성보다 즉시전력감 배출에 주력한 게 흠이라면 그 비판은 1군 감독이 받는 게 정상 아니냐”며 고개를 갸웃했다.

부산고 득세 VS 금시초문

이상구 롯데 단장은 정 전 감독의 해임 배경을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다면평가를 실시한 결과”라며 “팀의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로이스터 감독과의 협의에 대해서는 “충분한 교감을 나눴으며 로이스터 감독이 ‘구단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취재결과 이 단장의 다면평가에는 육성 부분을 제외한 몇 가지 문제도 걸림돌이 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항간에는 정 전 감독과 모 코치가 투수운용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을 빚었고 이것이 해임의 배경이 됐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정 전 감독은 “2군에 좋은 투수가 많다보니까 모 코치와 의견충돌이 있었던 것 사실이지만 큰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단장도 “감독과 코치간의 건전한 의사충돌은 당연한 것”이라며 “그 문제가 (해임의)직접적인 배경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정 전 감독과 모 코치의 갈등이 구단 고위층에 보고됐고 어떤 의미에서든 그것이 정 전 감독에게 불리하게 작용한 것만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정 전 감독과 함께 그 코치 역시 유니폼을 벗었기 때문이다.

정 전 감독의 해임을 구단 내 파벌싸움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특정고교 출신들이 구단을 장악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부산고 출신들이 코칭스태프를 독식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구단 내부 관계자들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들이다. 롯데를 잘 아는 인사들도 “과거 경남고라면 모를까 부산고의 득세는 처음 듣는 소리”라는 반응을 보였다.

<스포츠춘추>에서 롯데 1, 2군 코칭스태프의 출신고와 대학을 정리했다.




<표>에서 보듯 부산고 득세의 뚜렷한 혐의는 발견할 수 없다. 양상문 2군 감독과 주형광 재활군 코치가 영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코칭스태프 가운데 부산고 출신은 박계원 2군 수비코치가 유일했다. 오히려 마산상고 3명, 인천고 2명 등으로 비부산고 출신이 눈에 띈다.

혹여 양상문 2군 감독, 주형광 코치 영입이 부산고 파벌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분석이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구단 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조현봉 롯데 운영팀장은 “주 코치가 현역에서 은퇴한 뒤 구단에서 지바롯데 마린스로 코치연수를 보냈다”며 “프랜차이즈 스타를 코치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원안대로 이행하는 것 뿐”이라며 출신고와 코치영입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양 감독 영입도 출신고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게 구단 측의 설명이다. 이 단장은 양 감독을 “전임감독이라 팀을 잘 파악하고 지도자로서도 이미 검증된 분”이라고 평가한 뒤 “장기적인 안목에서 모셔온 것”이라며 영입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서 장기적인 안목이란 장기간 2군을 맡겨 선수 육성에 애쓰겠다는 뜻일 수도 있고 ‘포스트 로이스터’로 양 감독을 의중에 뒀다는 소리일 수도 있다.

행간을 어느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장기적 안목’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이 달라질 수 있다.

인사권은 구단의 고유영역 VS 인사권 비판은 팬의 고유영역

정 전 감독은 17일 해임통보를 받고 현재 경산 집에 머물고 있다. 자신의 해임을 둘러싸고 팬들의 반응이 뜨거운 것에 대해 “고맙다”라고 인사를 건넨 뒤 “코칭스태프 인사권은 구단의 몫이라 전혀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며 “쉬는 동안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해 좀 더 나은 지도자가 되겠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1985년 롯데에서 현역으로 뛸 때의 정영기(사진=롯데)




야구계 일부에서는 “인사권은 구단의 고유권한이다. 게다가 2군 감독의 교체가 이렇게 화제가 된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정 전 감독을 아끼는 분들의 뜻은 이해하지만 지나친 노력은 되레 정 전 감독의 진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론 반대편의 의견도 만만치 않다. 롯데팬 석영창 씨는 “인사권이 구단의 고유영역이라면 석연치 않은 인사권 행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은 팬들의 고유권한”이라며 “불명확한 이유로 일 잘하는 지도자를 해임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인사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정 전 감독은 자신의 문제와 관련돼 갖가지 억측과 오해가 난무하는 현 상황을 몹시 버거워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게 그의 아내는 심장병 수술을 3차례나 받은 바 있는 환자다.

새로운 팀의 러브콜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정 전 감독을 영입하겠다고 나선 팀은 아직 없다. 한화 복귀를 예상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아직까진 불투명하다. 정 전 감독도 이와 관련돼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지금껏 1군 감독 경질은 매번 야구계의 화제였다. 팬들의 비판과 저항도 심심찮게 있어왔다. 그러나 2군 감독 경질을 두고 팬들이 이처럼 이의와 부당함을 제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배경이야 어찌됐든 프로야구의 흥행과 함께 야구팬들의 시선이 1군뿐만 아니라 2군으로까지 확장된 느낌이다. 오해와 억측이 배제된다면 정 전 감독의 경질처럼 2군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충분히 야구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그것이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한다면 야구계의 담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팬과 구단이 공존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되고도 현명한 방법은 투명함과 예측가능한 행동들이다. 정 전 감독 경질을 둘러싼 논란이 야구계에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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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야겔에서 가지고 왔다는..
애들 안쓰러워서 어쩐다냐..-_-;;

보명이랑 기혁이 표정 좀 봐라..뒤쪽에 원석이도 그렇고..
댓글중에..보명이 관련해서는..
"보명아..석류는 어쩌라고..."라고 하던데..
센스작렬!! ㅋㅋㅋ

다른 사진에서는 민호 표정도 장난 아니었다던데..
부산이 멀어서 연예인들 내려오기 힘들어서 시구 때 보기도 힘들텐데..
그래도 홍보는 확실히 되니까 마케팅 부서 담당자분들이 힘 좀 써 주셔야겠습니다..ㅎㅎ

선수들이 힘내서 더 잘 할지도 모르니까요..
아..그 경기 수훈선수에게 격려의 포옹 한 번이 부상으로 주어진다면,
젊은 선수들 눈에 불켜고 할지도 모른다는..>_<
(왜..KBS N Sports에서 중계하고, 석류나 지선 누나가 오시면,
 애들이 눈에 불켜고 한다던데 뭘..ㅋㅋㅋ)





연예인 시구 자주 하는 두산의 자세



'연예인 또 왔네? 이번엔 누구?' 하는 듯한 다들 심드렁한 표정







연예인 시구 자주 안하는 롯데의 자세






















 


..... 말이 필요 없음


 


롯데 연예인 시구좀 자주 해주세요~

선수들 안쓰러워요 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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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염종석 `공 하나에 자존심을 건다'

(서울=연합뉴스) 진규수 기자 = " 이제는 마지막이다. 보직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

통산 93승을 올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베테랑 투수 염종석(35)은 아직 불펜 투수가 익숙하지 않다.

부상으로 인해 올해 개막 로스터에 들지 못한 뒤 2군에서 와신상담한 염종석은 지난 6월19일 올 시즌 처음 1군에 등록, 중간계투로 4경기에 나섰다.

1992년 17승을 거두고 혜성처럼 나타난 뒤 16년간 롯데 마운드를 지켜오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염종석이었지만 올해는 순탄치가 않았다.

7승만을 남겨둔 통산 100승에 대한 욕심도 컸고 올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전지훈련에 임했지만 훈련 도중 고관절 부상을 입고 조기 귀국하면서 일이 꼬였다.

새로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염종석을 배려하지 않고 투수진을 구성했고 가뜩이나 1군과 2군 사이의 교류가 없던 롯데는 5선발 로테이션이 유례없이 탄탄히 돌아가면서 승승장구 연승 행진을 벌였다.

5월 중순 로이스터 감독은 그에게 2군에서 불펜 투수로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2군에서 불펜 투수로 한 달을 연습한 뒤에야 1군에서 기회를 줬다.

17년 만에 처음 받아드는 보직인 중간계투는 아직 얼떨떨하다. 급하게 몸을 풀어 1~2이닝을 전력투구해야 하는 패턴도 익숙하지 않고, 이대로라면 통산 100승은 커녕 언제 은퇴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염종석은 " 4월 말까지만 해도 선발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며 " 하지만 이대로 가면 내년 기약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계투든 패전처리든 투수 염종석을 판단해주길 바란다는 마음에 올라왔다 " 고 말했다.

다행히 지금까지 성적은 좋다. 4경기에 나와 모두 7이닝을 던져 무실점으로 막았고, 로이스터 감독 역시 염종석의 구위에 대해 흡족한 평가를 내렸다.

염종석은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하던 1992년 멤버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선수. 당시 고졸 신인으로 완벽한 주연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염종석은 이제는 스스로를 `조연'으로 낮춘다.

그는 " 모든 공 하나 하나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던진다 " 며 " 언제까지 기회가 주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내일 2군으로 내려가면 오늘 기록이 투수 염종석의 마지막 기록이 될 수도 있기 때문 " 고 담담하게 말했다.

nicemasar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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