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감독설' 울리에와 한국 축구의 인연

[스포탈코리아] 서형욱 기자=축구협회의 외국인 감독 협상 창구로 알려진 가삼현 사무총장이 출국한 가운데, 현재 축구협회 안팎에서는 프랑스 출신의 제라르 울리에 감독이 '1순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울리에, 차기 한국 감독 후보 1순위?

화려한 프로 선수의 경력은 없지만, 매력적인 감독 경력을 갖고 있는 울리에는 대학 시절 영문학을 전공하고 리버풀에서 젊은 시절 짧게, 그리고 감독 시절 오래 머물러 유창한 영어 구사력을 자랑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협회가 유독 중요하게 여기는 '영어 구사력'이 뛰어나면서 현재 '놀고 있는' 몇 안되는 유명 감독이 울리에라는 사실은 협회가 그를 1순위 후보로 점찍었다는 사실에 신빙성을 더한다.

2006/07 시즌 올랭피크 리옹의 프랑스 리그 우승을 이끈 뒤 일신 상의 이유로 감독직을 놓은 그는 프랑스 PSG 시절의 리그 우승과 리버풀 시절 UEFA컵 우승을 비롯해 수 많은 트로피를 거머쥔 바 있는 명장이다.

여러 번의 우승, 그러나 비난 일색이던 리버풀 시절

하지만 호시절만 있던 것은 아니어서 리버풀 시절에는 재미없는 '뻥 축구(Long-ball)'로 팬들의 극렬한 비난을 받았고 프랑스 대표팀 감독 시절에는 전임 플라티니 감독(현 유럽축구연맹 회장)이 틀을 잘못 잡은 팀을 이어받아 94년 월드컵 탈락의 멍에를 홀로 뒤집어 썼다. 그러나 프랑스 축구협회는 그의 능력을 인정해 이후에도 계속 기술위원으로 일했다.

필자가 리버풀에 거주했던 1년 여(2003년 7월~2004년 10월)는 리버풀 울리에 시대의 마지막 시기였다. 당시 리버풀 팬들은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는 이유로 울리에 축구를 맹렬히 비난했는데, 리버풀 구단의 연습 구장 벽에는 '울리에 감독, 에이즈나 걸려 죽어버려(Hope you die of Aids Houllier)'라는 낙서가 그려질 정도였다. 리버풀 팬들이 울리에의 축구를 싫어했던 이유는 그가 최전방에 마이클 오언-에밀 헤스키 두 선수를 박아둔 채 롱패스로 공격을 전개하는 '수비 강화' 전술에 주력해서다. '뻥축구'를 펼친다는 이유로 핌 베어벡 감독을 몰아냈던 게 불과 몇 달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흥미로운 대목이다.

그러나, 울리에가 늘 비난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리버풀이 그가 떠난 바로 다음 시즌, 그가 영입했던 선수들로 챔피언스리그 우승(2004/05)을 차지했는데 이 성과에서 울리에의 몫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또, 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프랑스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으로 평가된다. 당시 그는 특별 공로 메달까지 받았다. 특히 그는 90년대 프랑스 대표팀의 유망주 육성 정책 수립 과정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과정에서 티에리 앙리, 다비 트레제게 등 현재 수퍼 스타로 자란 수많은 선수들의 성장에 기여한 바 있다.

한국 축구에 '한 수' 가르치다

울리에가 한국 축구와 인연을 맺은 것도 그 무렵이다. 94년 월드컵 진출에 실패한 이후 프랑스 축구협회에서 일하던 그는 지난 1996년부터 2년간 프랑스 20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997년 말레이지아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월드컵에서 울리에의 프랑스는 박이천 감독(현 인천 감독)이 이끌던 대한민국과 조별 예선에서 만났다. 결과는 프랑스의 4-2 승리. 스코어는 두 골 차였지만 경기 내용은 참혹했다. 당시 프랑스는 이른바 '황금 세대'격 멤버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멤버 면면이 '엄청나게' 화려했다. 티에리 앙리(FC바르셀로나), 다비 트레제게(유벤투스)가 투톱으로 나섰으며 수비진에는 빌리 사뇰(바이에른 뮌헨), 빌리암 갈라스(아스널), 미카엘 실베스트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포진해 있었다. 더군다나 후반전에는 최근 맨유를 꺾어 또 한번 화제가 된 니콜라 아넬카(볼튼)가 교체 공격수로 출전했다.

당시 프랑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한국팀은 초반부터 상대의 맹공에 흔들렸고 경기 시작 3분 만에 앙리와 트레제게에게 각각 1골씩을 헌납한 데 이어 전반 10분 앙리에게 한 골을 더 추가 허용, 순식간에 0-3으로 끌려가며 전의를 상실했다. 후반 7분 트레제게에게 네 번째 골을 내준 한국은 이후 다소 느슨해진 프랑스를 상대로 박진섭(성남 일화)이 2골을 터뜨린 데 힘입어 2-4로 경기를 마쳤다. (마지막 골은 실베스트레의 파울로 얻은 PK골이었다.)

[이관우, 안효연(이상 수원 삼성), 서기복(인천), 심재원(부산) 등이 포진해 언론에서 '역대 최강'이라고 추켜세웠던 당시의 한국 팀은 정보 부족으로 인한 대처 미흡으로 울리에의 프랑스에 완패한 뒤 3일 뒤 벌어진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전반에만 무려 6골을 내주는 참혹한 난조 속에 3-10으로 완패하며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저 유명한, '쿠칭의 비극'이다.] 무려 10년도 넘은 과거의 얘기지만, 울리에와 한국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현지에서 협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 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그가 한국 감독직을 수락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당시 경기 장면을 꽤 자주 TV를 통해 접하게 될 것 같다.

제라르 울리에, 과연 올까?

울리에 영입설의 진척 사항은 잘 알 수 없지만, 그가 온다면 적어도 두 가지는 확실하다. 첫째는 '재미있는 축구'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두번째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를 통해 한국의 유소년 시스템이나 국제적인 네트워크 구축에 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물론, 협회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힘든 선택이 될 것이다. 알려진대로 그는 '상당히' 고집스런 성격의 소유자여서 (협회와는 달리) 언론의 평가보다는 본인의 소신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름값'도 높은 사람이니 협상이 진행중이라 하더라도 한국행 가능성이 높진 않아 보이지만 그가 만일 14년 전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프랑스 대표팀 감독 시절)의 '한'을 풀고 싶다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도 그에게는 괜찮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물론, 진난 2001년 프리미어리그 리즈와의 경기 하프타임때 급작스런 심장 마비로 수술대에 올랐던 병력과 리옹 감독에서 물러날 당시의 사정을 감안하면 건강 상태에 대한 점검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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