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년이 지났구나..
지금까지 이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이 뉴스를 본 사람이 채 몇이나 될까?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고 있다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손가락일까? 달일까?
가리키고자 한 문제의 본질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너무 쉽게 분노하고,
너무 쉽게 그 분노의 기억을 머리속에서 지워버리며,
너무 쉽게 체념한다.

20년이 흘렀을 때, 나 역시도 현실을 핑계삼아, 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자본과 권력의 주구가 되어 있을까?
그렇게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항상 채찍질해야 할 것이다.

덧1. 노회찬 의원의 경우 국회의원 신분일 때 저 내용을 발표한 건 확실한데,
         그렇다면 국회 밖에서 저 내용을 발표한건가??
         헌법 제45조를 보면,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외에서 책임
         을  지지 아니한다.
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게 문제가 되려면 직무상 행한 것이 아니거나,
         국회 밖에서 발언을 했단 말인데..
         전자는 아니라고 최후진술서에서 밝히고 있는 것 같고, 그렇다면 후자인데, 한 번 알아봐야겠다..

덧2. 기소내용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후진술서에 기재된 대로 '삼성 x파일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였다는 이유'와 '그 허위사실로 인해 개인의
          명예가 훼손당했다는 주장' 때문이라면,
         개인적으로는 두 기소내용 모두 공익을 위한 정당행위로서 위법성이 조각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형법총론상의 조항을 들지 않더라도,
        헌법 제46조 2항,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는 규정에 의해
        자신의 국회의원으로서의 헌법적 의무를 다한 것이므로,
         정말로 독립적이고 양심에 의해 재판하는 판사라면, 무죄를 선고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기대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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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의 최후진술서(삼성 X-파일 재판 관련) -노회찬 진보신당 상임대표 법정진술 전문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본 법정에 서게 된 것은 이른바 삼성 x파일 내용의 일부를 공개하였다는 이유와 그 허위사실로 인해 개인의 명예가 훼손당했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삼성 x파일 사건의 본질은 불법도청에 있지 않습니다. 불법도청은 손가락일 뿐이며 그 손가락이 가리킨 진실의 달이 바로 삼성 x 파일입니다. 불법도청은 되풀이 되어선 아니 될 위법행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x파일에 담긴 진실이 훼손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은 대화의 당사자인 홍석현, 이학수씨나 이들의 대화과정에서 등장하는 몇몇 개인에 관한 사건이 아닙니다. 삼성 x파일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이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고 국가의 기강을 뿌리 채 뒤흔드는 범죄의 현장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유수의 언론사 사주와 최대 재벌그룹의 최고위직 간부가 일년여에 걸친 기간동안 수십차례 만나서 범죄를 모의하고 집행을 확인하는 믿기 힘든 사실이었습니다. 뇌물을 건넬 전현직 검사리스트를 놓고서 ‘누군 얼마 누군 또 얼마’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선 차라리 눈을 감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이 범행을 지시하면 다른 한사람이 복창하며 받아 적는 대목에선 귀를 막고 싶은 심경이었습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온전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할 대통령선거에 수백억원의 자금을 동원하여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가 하면 국가의 수사 및 소추권을 전담하고 있는 검찰의 고위간부뿐 아니라 소장검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불법뇌물을 제공하거나 그 계획을 모의함으로써 공공의 이익이 현저하게 훼손당하는 참담한 현실을 x파일에서 목격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본질은 한 국가를 좌지우지 하려한 거대 자본의 불법행위와 횡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2005년 7월 중순부터 각 언론사의 보도를 통해 삼성 x 파일의 내용이 공개되기 시작했습니다. 7월 21일 KBS가 홍석현, 이학수씨의 실명을 보도했고 7월 22일 MBC는 세칭 떡값검사의 직책과 성명이니셜을 보도하였습니다. 월요일인 7월 25일 중앙일보는 신문 1면에 <다시 한번 뼈를 깎는 자기 반성을 하겠습니다>는 제목의 사과사설을 실었고 같은 날 삼성그룹 역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 x파일이 홍석현, 이학수씨의 대화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리고 7월 26일 홍석현 주미대사가 <이번 일로 많은 국민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그분들에게 용서를 구할 뿐이다>는 말을 남기며 대사직 사임을 발표하였습니다.

국민들은 경악하였습니다. 세풍사건등 지난 시기 불법대선자금 사건에서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던 진실들이 삼성 x파일을 통해 퍼즐조각 맞추듯 드러나는데 놀랐고 풍문으로 짐작하던 자본, 권력, 검찰, 언론의 유착관계의 실상이 사실로 확인되는데 국민들은 놀랐습니다. 참여연대와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 이건희, 홍석현, 이학수씨와 이니셜로 지칭된 떡값검사들을 고발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은 분노하였습니다. 70%의 국민들이 x파일 사건 수사를 검찰에 맡길 수 없다며 특별검사제 도입에 찬성하였고 73%는 x파일의 내용을 공개하는데 찬성하였습니다. 8월 11일 민주당 이은영의원등 146명은 x파일 내용공개를 위한 특례법안을 제출하면서 그 제안 이유에서 <1997년 제 15대 대통령선거 당시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대기업의 사주가 언론사 사장을 통해 대선후보들에게 불법정치자금 또는 뇌물을 제공하였고 대기업이 평소 중요한 국가기관인 검찰의 주요 간부들에 대하여 이른바 떡값을 제공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음이 드러났다>고 규정하였습니다. 한나라당 역시 강재섭의원 등 141인이 <안전기획부의 불법도청자료 중에 대기업이 정치인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검찰의 주요인사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정치권력과 대기업, 언론사의 유착관계가 드러나 국민들의 의혹과 진상규명의 요구가 높다>면서 특검법안을 발의 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참여연대의 고발사건을 수사를 위해 7월 26일 공안2부장을 팀장으로 공안2부 검사 4명, 공안 1부 검사 1명, 특수부 검사 1명으로 수사팀을 구성했다고 발표만 했을 뿐 불법수집증거 운운하며 수사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x파일에 자신의 실명이 거론된 법무부 차관은 국회 8월 22일 법사위에서 <7월 21일 모 방송국 9시뉴스에 떡값 명단 소문이 있던 터에 녹음테이프를 입수한 대검관계자가 자신에게 떡값명단에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국민들의 빗발치는 요구에도 불구하고 불법수집된 증거이므로 이를 토대로 수사할 수 없다고 하던 검찰이 정작 수사대상에게는 불법수집된 증거 내용을 알려줌으로써 사실상 수사를 방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바로 이런 상황에서 x파일의 내용을 입수한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제가 x파일 내용을 공개한 날 한나라당 홍준표의원조차 KBS와의 인터뷰에서 “노회찬의원은 권력비리를 감시 비판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헌법적 의무를 다한 것이므로 헌법의 하위법인 통신비밀보호법으로는 규제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x파일의 세칭 떡값검사 명단에는 현직 법무부차관과 고등검사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현직 법무부장관이 삼성 x파일 사건에 대해 ‘정치권력, 언론, 자본, 검찰, 과거 안기부 등 거대권력 남용의 종합판이자 결정판’이라 평가하면서도 필요하다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겠다고 할뿐 속수무책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법사위원이 제가 어떻게 해야 국회의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까? 명예훼손 등으로 저를 고발한 분은 사실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문제제기 하고 있습니다. 2005년 12월 14일 발표된 서울중앙지검의 중간수사결과에서도 이 건과 관련하여 <자의에 의한 자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확인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확인에 나서지 않는 검찰을 그나마 나서게 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삼성 x파일 사건이 나라를 뒤흔든지 이제 4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4년이 지난 오늘의 현실은 제가 x파일 내용을 공개하던 당시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거대권력 남용의 결정판이었던 x파일 사건과 관련하여 단 한명도 기소되지 않았고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떡값수수의혹 전현직 검찰간부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수사조차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7대 국회의원 거의 전원이 발의했던 특검법도, x파일 공개 특별법도 자동폐기 되었습니다.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한다며 대사직을 사임한 사람은 이제 x파일 대화 자체를 부인하며 테이프 조작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안개가 걷히면 본래의 풍경이 뚜렷이 드러나듯이 x파일 사건이 지나가면서 남은 것은 공공의 이익과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앞장선 두 사람이 법정에 피고의 자격으로 서 있는 모습뿐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본 법정에서 마지막 진술을 하는 이 순간까지도 제가 당시 국회의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는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 법정에서의 재판은 저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한 판결을 넘어서서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 전범을 만들어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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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의료내역 제출 의무조항' 합헌

뉴시스 | 기사입력 2008.10.30 20:27

30대 남성, 제주지역 인기기사 자세히보기

【서울=뉴시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30일 의사 A씨 등이 "환자의 동의없이 의료비 내역을 제출토록 의료기관에 의무를 부과한 소득세법 제165조는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명이 "해당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해당 법령조항은 근로소득자들의 연말정산 간소화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의료비내역을 국세청장에게 제출하도록 하는 것으로,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절성이 인정되고, 국세청장에게 제출되는 내용도 환자의 민감한 정보가 아니고 소득세공제액을 산정하기 위해 필요최소한의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어 "납세자의 편의와 사회적 제비용 절감을 위한 연말정산 간소화라는 공익이 이로 인해 제한되는 의사들의 양심실현의 자유에 비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고, 의료비 내역에 관한 자료가 일반 공중이나 경쟁관계에 있는 의료기관 등에 유출 또는 공개되는 것이 아니어서 의료기관의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청구인들의 진료정보가 본인들의 동의 없이 국세청 등으로 제출·전송·보관되는 것은 개인정보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이지만, 개인의 자기정보결정권이 필요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제한되도록 피해최소성의 원칙을 충족하고 있어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해 청구인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강국 조대현 이동흡 재판관은 별개의견으로 "헌법상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인 개인의 인격적 존재가치에 관한 진지한 윤리적 결정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고, 김종대 재판관은 "법령 규정 자체만으로 기본권 침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청구인들이 직접 기본권 침해를 받는다고 볼 수 없다"며 각하의견을 냈다.

국세청은 연말정산 간소화 방안의 일환으로 의료기관의 소득공제증빙서류 제출을 의무화한 '소득세법 및 시행령'을 시행했다. 이에 A씨 등은 2006년 "소득세법 165조는 헌법 10조(행복추구권)와 17조(사생활 비밀과 자유 침해)에 반하고 환자의 동의가 없는 자료제출 의무는 사생활 침해와 인권침해 요소가 있는 독소조항"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소득세법 165조(소득공제증빙서류의 제출 및 행정지도)는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필요한 증빙서류를 발급하는 자는 정보통신망의 활용 등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세청장에게 소득공제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허겸기자 khur@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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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OTL-30개의 시선25] 세상을 흔든 3개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헌법상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위헌 제청
    2008년 가을, 세 개의 결정문이 세상을 흔들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는 10월9일 야간 옥외집회를 사실상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앞서 광주고등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한주)는 9월17일 종신형이 없어 흉악범에게 사형선고가 불가피한 현실을 지적하며 사형을 규정한 형법 41조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고, 춘천지법 형사1부(재판장 정성태)는 9월5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처벌을 규정한 병역법 88조 1항에 대해 직권으로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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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개의 결정에 세 명의 ‘정의의 사도’가 뿔났다.

    이명박 대통령은 9월26일 대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사법의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의 보수가 양치기 소년의 “늑대다!”만큼 애용하는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사법부의 환갑잔치에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위헌법률심판 제청만을 겨냥한 말은 아니었지만, 사법부의 과거·미래·현재에 대한 대통령의 경고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다. 이번엔 한나라당 의원들이 저격수로 나섰다.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이 10월14일 광주고등법원 국정감사 현장에서 종신형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광주고법 재판부에 “국민 인기에 영합하는 판결 아닙니까?”라고 쏘아붙였다. 앞서 10월9일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등법원 국감에서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은 촛불집회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집시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박재영 판사를 언급하며 신영철 중앙지법원장에게 “젊은 판사들이 나이와 경험이 짧아 문제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관리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신 법원장이 “예, 밥 사주고 있습니다”라고 짧게 답하자 홍 의원은 “반응이 어땠느냐”라고 친절하게 되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법원장이 밥 먹자고 하면 싫어한다”였다. 참, ‘선방’은 <조선일보>가 날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8월 박재영 판사가 안진걸 광우병대책회의 조직팀장에 대한 재판에서 피고인의 진술을 친절하게 청취하고 보석 결정을 내리자 ‘불법 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사설로 일갈했다.

    그래서 정성태 부장판사는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문에 이렇게 못박아두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헌법적 이념을 넘어서 정치적 내지 종교적 문제로 비틀고 재단하려는 사고를 경계한다.”


    그들은 ‘슈퍼맨’처럼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으려 애썼다. 먼저 국방부가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를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집회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하고, 소음 기준을 강화하고, 벌금을 증액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잇따라 내놓았다. 한국은 지난해 말로 사형 집행을 10년 동안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가 됐지만, 보수 정권이 사형 집행을 재개할지 모른다는 불안감도 감돌았다.

    이렇게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하수상한’ 슈퍼맨의 독주에 판사들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으로 제동을 걸었다. 한 현직 판사는 “지난 정권에선 문제 조항이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가 많지 않아) 문제가 덜 됐는데, 이젠 더욱 문제가 되니 이런 결정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런 판사들은 소수지만, 사법부마저 하지 않으면 (정치권에) 문제를 제기할 집단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회는 다수를, 사법부는 소수를

    판사는 재판을 통해서 바뀐 세상을 말했다. 춘천지법 정성태 부장판사는 “이르면 내년부터 대체복무제 시행이 예상됐으나 최근 정부가 방침을 번복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병역거부자들이 좌절을 겪게 됐다”고 위헌법률심판 제청 배경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박재영 판사는 “간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차츰 드러내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를 지적하고 “임기제의 폐해를 보완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집회의 자유는… 새롭고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고 시대상을 결정문에 명시했다. 그리고 야간집회를 사실상 못하게 하는 집시법이 집회의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에 위배되는 점과 더불어, 직장인들은 생업으로 주간에 집회 참여가 힘든 점 등을 위헌 소지 근거로 들었다. 1994년 헌법재판소가 같은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을 때와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광주고등법원 재판부도 “학자들 사이에서… 사형존치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라고 지적한 뒤 헌법재판소가 1996년 사형제도에 대한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시대 상황이 바뀌면 사형제를 곧바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음을 상기시켰다. ‘아직은’ 어려웠던 일들을 ‘이제는’ 하자는 취지다.

    » 세 건의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판사들. 사형제를 위헌 제청한 김도근 판사, 집시법을 위헌제청한 박재영 판사, 병역법을 위헌 제청한 정성태 판사(왼쪽부터).

    이것은 헌법상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위헌 제청이다. 집시법은 표현의 자유,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 사형제는 생명권을 상징한다. 그래서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는 “좌우를 떠나 비틀어진 사회를 제자리에 놓는 과정이다”라고 지적했다. 정치가 아니라 법치와 인권의 논리란 것이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민주주의는 다수 독재”라며 “다수 독재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보루가 사법부”라고 말했다. 이렇게 삼권분립에 바탕해 다수파 기관인 행정부·입법부를 견제할 의무가 사법부에 있다는 것이다. 이재승 건국대 교수(법학)는 “국회가 선거를 의식해 다수를 위한 법안을 만든다면, 사법부는 소수자 인권보호 기능을 가진다”며 “동성동본과 호주제가 위헌 판결이 나지 않았다면 국민정서법상 500년이 가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보수파든 진보파든 소수자에게 법원은 보험”이라고 덧붙였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사법부는 가장 늦게 반응하는 기관”이라며 “성숙한 국민의식이 사법부를 압박해서 나온 결과”라고 해석했다. 나아가 인권투쟁의 역사가 사법부 독립의 역사라는 지적도 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세계인권선언 30개 조항 가운에 6개(6조 ‘법적 주체로서의 권리’부터 11조 ‘무죄 추정의 원칙’까지)가 사법권에 대한 것”이라며 “이렇게 전체의 5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인권보호에서 사법부의 구실을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구 세대 사이 ‘낀’ 세대

    그렇다면, 정치권의 ‘슈퍼맨’에 맞서는 검은 법복의 ‘배트맨’은 누구일까.

    <조선일보>가 차라리 법복을 벗으라고 공격한 박재영(40) 판사는 고려대 법대 87학번으로 1995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98년부터 부산지방법원에서 예비판사를 시작했다. 이어 의정부지법, 서울중앙북부지법 등을 거쳤다. 지인들은 그를 한결같이 “조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했고, 그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뜻밖”이라고 놀라워했다. 박 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명한석 변호사는 “같은 반이었는데도 조용해서 잘 몰랐던 친구”라고 회상했다. 또 다른 동기인 박금섭 변호사도 “농구 모임을 같이 했는데 튀는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고 전했다. 박재영 판사의 연수원 1년 선배인 한 판사는 “완전 순둥이인 그가 위헌법률심판 제청 같은 ‘쿠데타’를 일으켜 상당히 놀랐다”며 “결정문을 아는 재판연구관에게도 줬는데 잘 썼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최근 그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다는 판사도 “정치와 머나먼 사람”이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골프도 치지 않는 검소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박 판사에게서 재판을 받던 중 그에게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한 안진걸씨도 “처음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엄격한 면모도 있다. 재판 당시 방청객이 피고인 안씨를 응원하는 함성을 지르자 방청객을 꾸짖고 내쫓은 적도 있다.

    병역법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직권으로 제청한 정성태 부장판사도 ‘진보적’이기보다는 ‘원칙적’인 판사에 가깝다. 정 부장판사는 서울대 법대 86학번으로,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군법무관 생활을 거친 뒤 96년 울산지원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거친 뒤 올해부터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로 제1형사부 재판장을 맡고 있다. 대학 동기인 김도형 변호사는 “착실하게 공부하는 모범생”으로 그를 기억했다. 정 부장판사는 대학에 들어와 5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김 변호사는 “4학년 때 합격하는 동기가 10명 정도에 불과하니, 합격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며 “학생운동에 관여하진 않았지만 묵묵하게 시대를 고민하는 친구였다”고 돌이켰다. 1990~91년 연수원 시절엔 환경법학회에 참여했다. 춘천지법에 출입하는 지역 언론의 한 기자는 “배심원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 전국 사례를 10월에 모았는데 배심원과 판사의 평결이 다른 두건이 모두 정성태 부장판사의 재판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배심원들이 법리를 혼동해 벌어진 일인데, 항소심이 있으니까 배심원에 맞춰 평결을 해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평소에 법원 바깥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인다”는 평가도 받는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26일 대법원에서 열린 사법 60돌 기념식에 참석해 이용훈 대법원장(왼쪽), 김형오 국회의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사법 포퓰리즘’ 언급이 나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의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예상된 것은 아니었다. ‘양심적 병역거부 수형가 가족모임’의 홍영일 공동대표는 “병역거부자 재판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판사에게 위헌법률심판 신청을 한다”며 “춘천은 우리가 신청도 하지 않았는데 판사가 직권으로 제청했다”고 말했다. 정 부장판사는 “(제청 뒤로) 오히려 격려를 많이 받았다”며 “2004년 합헌 판결 뒤에도 유엔의 대체복무제 입법 권고 등 중요한 변화가 있어서 헌법재판소가 다시 고민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춘천지법 제1형사부는 지난 4월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고 항소해 올라온 병역거부자의 재판을 연기하는 등 4명의 병역거부자 재판을 병합해두고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고민했다.

    인권과 법치를 고뇌하는 ‘배트맨 세대’는 어디서 왔을까. 이들은 1980년대 대학에서 시대의 영향을 받았고, 90년대 임용된 뒤에는 사법부 독립의 토대에서 성장했다. 변호사 출신인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사법연수원의 ‘강남화’가 오기 직전에 연수원을 마친 민주화운동 세대 법조인이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1997년 내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갈 당시엔 동기 중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원이 30명까지 늘었다가 다시 줄었다”며 “지금은 연수원의 강남화가 심해져 연수원생 40%가 강남 출신”이라고 말했다. 또 윗세대를 보자면,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은 권위주의 정권에서 임용돼 살아남은 이들이 많다. 이처럼 보수적인 신구 세대 사이에 ‘낀’ 세대에서 전향적 판결이 나오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김도형 변호사는 “젊은 시절 군사독재 정권을 경험한 이들은 법치주의에 대한 열망이 크다”며 “지금은 이들을 통해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검찰에 견줘 조직체계의 영향을 덜 받는 법원의 특성도 영향을 끼친다.

    광주고법의 사형제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춘천지법의 병역법 위헌법률심판 제청처럼 항소심 합의부가 결정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 판사들은 “놀라운 결단이다” “감동이다” 등의 평가를 쏟아냈다. 보통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형사단독 재판부에서 나오는 경우가 잦다. 형사단독은 법원의 ‘허리’에 해당하는 경력 6~10년차 젊은 판사들이 담당한다. 또 합의부와 달리 결정을 혼자 내린다. 그만큼 법원의 위계질서에 덜 짓눌린 판사들의 결정이란 것이다. 그러나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부장판사가 재판장으로 있는 합의부에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나오는 건 드물다. 지금까지 사형제에 대해 민간인이 낸 헌법소원은 두 차례 있었지만, 판사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광주고법의 결정은 더욱 의미를 지닌다.

    ‘70대 어부’ 사건에서 나온 ‘사형제 폐지’

    광주고등법원 형사1부의 재판장인 이한주(52)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해태그룹 박건배 전 회장의 횡령 혐의에 대해 집행유예 없이 1년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경제인 재판만 하면 ‘봐주기 판결’을 한다고 비판받던 법원의 체면을 조금은 세운 판결이었다. 당시 박 회장을 변호하던 변호사가 이한주 부장판사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막역했다는 점에서 실형 선고는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배석판사이자 이번 사건의 주심이었던 김도근(36) 판사도 조용한 성품에 ‘엄격하게 법 적용을 하는 판사’라는 평판을 듣는다. 김 판사는 2004년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서 형사단독으로 있을 때 영장 기각을 많이 했다. 불구속 수사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다.

    » 2004년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총련 수배자 학부모 모임 회원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제 기본권 보장의 열쇠는 헌재가 쥐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들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건의 피고인은 여성 4명을 연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70대 어부’다. 이런 범죄는 사회의 지탄을 받기 마련이고, 이런 사건을 두고 사형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김성주 광주고등법원 공보판사는 “판사들은 누구나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사형선고를 고민한다”고 전했다. 그래서 사형의 위헌적 요소에 대해 고민하지만, 막상 이를 실행에 옮기긴 쉽지 않다. 더구나 위헌법률심판 제청 자체가 판사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한 현직 판사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법률을 적용해야 할 판사가 ‘법률이 말이 안 된다’고 선언하는 의미도 있어서 두려운 일이다”라고 전했다. 그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쿠데타’에 비유했는데,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단독’도 아니고 후배와 ‘집단’으로 감행했다는 면에서 놀라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보수성은 근거와 공정성”

    배트맨의 ‘미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 결정이란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래도 일반 국민이 법에 대해 위헌성을 제기하는 헌법소원에 견줘 판사가 재판에 관련된 법률의 위헌성을 묻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은 ‘타율’이 높은 편이다. 1998년 헌법재판소 창립 이래로 2008년 9월 말까지 위헌법률심판 제청의 인용률(헌법재판소에서 위헌성이 인정된 비율)은 42.0%로 헌법소원의 15.2%에 견줘 높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판사들보다 선배 법조인들이다. 보통 상급심으로 갈수록 법원의 분위기는 보수로 흐른다. 하급심과 상급심의 이런 ‘온도차’에 대해 한상희 교수는 “판사들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승진을 하지만, 지방법원 부장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되는 과정에서 발탁인사가 이뤄진다”며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 등 윗선의 코드에 맞추는 사람이 아무래도 살아남기 유리해 상급심에서 보수적 판결이 많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법조는 원래 보수적’이란 관념은 보편적일까. 미국에서 법학을 공부한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있는 것을 지키는 것이 법이 아니라 옳은 것을 지키는 것이 법”이라며 “존재하지만 옳지 않은 것은 바꾸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법조인이 보수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법조인이 무언가 주장할 때 근거를 가지고 공정성에 입각해서 논리를 펴야 한다는 뜻으로, 절반만 맞는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사법부는 야누스의 얼굴을 지녔다. 앞서 언급한 세건의 위헌법률심판 제청이 미래로 향하는 빛이라면, 최근의 삼성 판결은 과거로 들어가는 어둠이다. 젊은 현직 판사는 “정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상당히 진전됐지만, 영속적 권력(경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요원하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기업 변론을 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삼성과 촛불 판결이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다르지 않다”며 “법원의 인적 구성이 보수화되면서 지배 체제에 반하는 판결이 나오기 점점 힘들다”고 말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한겨레21인권위원)는 “노조의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이 갈수록 기업의 손을 들어준다”고 비판했다. 갈수록 노동·복지 문제에 대한 보수적 판례들이 쌓이면서 ‘자유권’은 확장되는 반면 ‘사회권’은 위축된다. 그래서 ‘계급 사법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으로부터의 독립은 요원

    검은 법복의 배트맨은 선거로 뽑히지 않는다. 박래군 활동가는 “사법부는 입법부·행정부보다 감시와 통제가 어렵다”며 “그래서 사법 민주화가 필요하고 사법 만능주의를 경계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사법권은 양날의 칼이다. 한편에선 앞으로 사법부가 ‘포퓰리즘 발언’ 같은 압력 속에서도 그나마 지켜온 독립성을 계속해서 지킬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적잖다. 올해로 환갑(60돌)을 맞은 사법부, 성년(20돌)을 맞은 헌법재판소가 어둠의 고담시를 지키는 배트맨 역할을 완수할 수 있을까. 미션 임파서블(Mission Impossible·불가능한 작전)? 임파서블 이즈 나싱(Impossible Is Nothing·불가능은 없다)! 그것이 문제로다.

    미국의 성조기 소각 무죄 판결

    보수가 동의하는 ‘헌법적 이념’

    1984년 8월 어느 날,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시.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기로 돼 있는 공화당 전당대회장 바깥은 100여 명의 시위대로 북적였다. ‘낙태 금지’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가두 행진을 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을 반대하는 미국 좌파 단체 국제청년당원들은 성조기를 끌어내려 불태우거나 건물 벽에 페인트칠을 하며 시위를 벌였다. 언론은 이미 결론이 정해진 공화당 전당대회보다 북적이는 시위대를 더 주목했다.

    그로부터 며칠 뒤, 국제청년당원 그레고리 존슨이 구속·기소됐다. 성조기를 불태운 게 문제였다. 텍사스 주검찰은 성조기 훼손 행위가 질서를 파괴하며 미국 상징의 신성성을 파괴하는 위법적 행위라고 발표했다. 100명의 시위대 중 유일하게 존슨만 구속됐다. 텍사스주 지방법원은 존슨에게 징역 1년, 벌금 2천달러를 선고했다.

    그러나 사건은 상급 법원으로 올라가면서 달라졌다. 텍사스주 고등법원은 “성조기를 소각한 것은 정치적 표현의 일부”라며 무죄판결을 내렸다. 텍사스 검찰은 연방대법원에 상고했지만 연방대법원 역시 1989년 ‘무죄’를 선언했다.

    무죄판결은 의외였다. 80년대 미국은 ‘애국의 시대’였다. 1989년 레이건 대통령에 이어 공화당 정권 창출에 나선 조지 부시 후보는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 후보가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의무 암송하라고 규정한 주의회 법안을 거부한 것을 강하게 공격하면서 지지율을 높여가고 있었다. ‘멜팅포트’(용광로) 미국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이 성조기였기에 여론은 성조기에 대한 맹세 등으로 상징되는 ‘애국주의’에 민감했다. 이런 정치적·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이 존슨에게 무죄를 선고할 수 있었던 것은 ‘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청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는 미 수정헌법 제1조의 이념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과 인권의 역사>를 쓴 장호순 순천향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당시 연방대법원 대법관들의 성향은 보수 6 대 진보 3으로 누가 봐도 유죄판결이 예상됐지만 법관들이 이념적 지향을 떠나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헌법적 이념을 지키는 쪽으로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헌법 정신에 충실한 연방대법원의 판결 분위기는 1953년 임명된 얼 워런 연방대법원장의 역할이 컸다. 워런 대법원장은 백인과 흑인 학생이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한 ‘브라운 사건’(1953), 주민 수에 입각해 의석을 배분하도록 해 투표의 평등 원칙을 관철한 ‘베이커 사건’(1962), 피의자 체포 때 묵비권 등을 고지하도록 한 ‘미란다 사건’(1966) 등 일련의 판결을 통해 ‘인권’과 ‘정의’에 천착한 원칙과 판례를 만들었다. 보수적인 공화당 소속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선택했을 정도로 워런 대법원장의 평소 정치적 성향은 ‘보수’였기에, 헌법적 가치에 충실한 그의 판결들은 더욱 돋보였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워런 대법원장이 이끌었던 1969년과 70년대는 아메리칸드림과 인권이란 미국의 도덕적 정당성을 ‘만드는’ 판결로 미국이 세계의 중심국이 되는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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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 수뇌부가 군대의 수준을 너무 얕봤다”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8.10.24 03:21 | 최종수정 2008.10.24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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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법무관 헌소 대리인' 최강욱 변호사


    ㆍ"軍이 헌법예외 기관인듯 착각… 불법징계땐 법적대응"

    현역 군 법무관 7명이 국방부의 이른바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표현물의 항명' 파문이 커지고 있다. 육군은 23일 소속 법무관 6명을 대전 육군본부 법무실로 불러 조사를 벌였다. 공군도 조사에 들어갔다.

    법무관들의 소송 대리인인 최강욱 변호사(40)는 헌소 제기 배경에 대해 "군 수뇌부가 군대의 수준을 너무 얕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이상희 국방부 장관(왼쪽)과 김태영 합참의장이 23일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굳은 표정으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박민규기자

    최 변호사는 2005년 국방부 고등검찰부장을 지내고 퇴역했다. 과거 '군법무관임용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함께 냈던 인연 등으로 대리인을 맡게 됐다고 한다. 최 변호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장성 이상의 군인이 아니면 상부의 허락 없이 언론과 접촉할 수 없도록 한 '국방공보규정' 때문에 당사자와는 인터뷰할 수 없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군 법무관 7명은 왜 헌법소원을 내게 됐나.
    "청구인들은 사법연수원 동기도 아니고 근무지도 각지로 흩어져 있다. 업무관계로 서로 연락하는 사이인데 자연스레 의기투합이 됐다고 한다. 지난 7월 국방부의 불온도서 지정이 있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자 서로 의견을 공유하게 됐다. 대부분 한심하다는 반응이었다. 군대가 군인의 업무에 대해서 명령과 복종만 염두에 뒀지, 헌법과 법률에 합치하는지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군대가 헌법에 예외적인 집단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군대 내에서 헌법과 법률이 제대로 집행되도록 감시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법무관들이 그런 부분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 위해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헌법소원을 제기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원래는 내부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봤다. 예를 들어 고충처리절차 등을 통한 방법이 있는데, 현실적으로 이 절차를 통해 시정된 사례가 없다. 그러던 차에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군사법원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불온서적 지정 방침을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내부적으로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보여 헌법소원을 내게 됐다."

    -군인이나 법무관들 사이에 불온도서 지정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던 건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컨센서스(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군 수뇌부가 군대의 수준을 너무 얕봤다. 군 수준을 무시하고 군인들을 복종의 대상으로만 보고, 판단력이 없다고 봤다."

    -국방부에서는 '항명'이라며 징계를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군 수뇌부의 반응은 예상했다. 헌법소원은 국민의 기본권인데 국민의 기본권 행사에 대해서 징계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최 변호사는 인터뷰 도중 '군 법무관들에 대해 압박이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헌소를 낸 법무관 중 1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군의 조사를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오늘 육군 법무실에서 오후 3시까지 육군본부로 소집해 대전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게 조사에 응해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하는데 별로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파문이 커졌는데 군 법무관들의 심경은 .
    "담담하다고 한다. 군에서도 함부로 징계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좌천'과 같은 인사조치가 우려되는데 '바로잡을 게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헌법소원을 내게 됐다. 만약 불법적인 징계가 있다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끝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한다."

    -법무관들의 군 경력은 어떻게 되나.
    "다양하다. 26세부터 38세까지 군판사, 군검찰, 행정업무 등 다양하다. 나이가 많은 청구인은 7년째 군 법무관 생활을 했다. 내년 봄 미국으로 해외연수가 예정돼 있다. 연수는 2년 기간인데 돌아오면 2배 기간인 4년 동안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 그만큼 군에 대한 애정이 있고 오래 있을 생각이 있는 사람이란 거다."

    < 이영경기자 samemind@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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