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회장, 사회공헌으로 죗값 갈음…법원 ‘제3의 길’ 논란
경향신문 | 기사입력 2007-09-06 18:39 | 최종수정 2007-09-06 22:39 기사원문보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가운데)이 6일 자신에 대한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된 뒤 밝은 표정으로 서울 서초동 고등법원청사를 나서고 있다. |김문석기자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재산으로 사회에 공헌하면 된다.” 6일 법원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 대한 징역형을 유예해주면서 내세운 논리는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감옥에 가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며 사람에 따라 맞춤식 양형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사실상 돈만 있으면 죄도 탕감할 수 있다는 ‘유전무죄’ 논리와 다를 것이 없어 돈이 없어 몸으로 때워야 하는 서민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제3의 선택=정몽구 회장 재판의 쟁점은 당초부터 유·무죄가 아닌 양형에 쏠려 있었다. 정회장이 처음부터 현대우주항공과 현대강관 유상증자 부분을 제외한 모든 혐의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이 선고된 상황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선택은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하느냐, 집행유예를 선고하느냐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회봉사명령을 추가해 절충안을 선택했다. 실형을 내리자니 현대차가 한국 경제에서 미치는 영향을 생각할 때 적절치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그냥 집행유예를 내리기에는 형이 너무 가볍다고 본 것이다.

이재홍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는 “투명 경영과 투명 사회로 가는 과도기의 마지막 단계로 이 사건이 터져나왔는데 현재의 잣대로 판단하는 게 현명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 현실에서 현대차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커 경제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항소심에서 가장 중요한 양형 참작 요소로 작용한 것은 정회장의 사회 공헌 약속이었다. 법원이 기업의 ‘거금출연’을 양형 사유로 인정해 준 것은 기업들이 각종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사후에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부패 범죄 엄단 의지 있나=법원은 ‘재벌 앞에 고개 숙인 법원’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다. 법원이 유독 재벌에 관대한 것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경우만이 아니다. 116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세금을 포탈해 1999년 11월 구속된 조양호 전 대한항공 회장은 ‘항공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을 평가 받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받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SK글로벌의 1조9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지시한 혐의로 2003년 3월 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2005년 7월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된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역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하나같이 1심에서 징역 3~5년의 실형이 선고됐으나 2심에서는 집행이 유예됐다.

특히 이용훈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줄곧 ‘화이트 칼라 범죄 엄단의지’를 천명해왔다.

그러나 이날 판결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공언(公言)은 결국 공언(空言)이었고, 법원의 의지는 ‘금력’ 앞에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과거와 새삼 다를 바 없는 판결인 셈이었다.

민변 송호창 사무처장은 이와 관련 “한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판결”이라며 “법원 판결에 형평성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인숙·박영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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