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정래 기자] '노력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 '천재는 1%의 재능과 99% 노력으로 탄생한다' '천재와 바보의 차이는 백지 한장 차이다'
위에 나열한 것들은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선인들이 남긴 격언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저 글귀가 얼마나 '개 풀 뜯어먹는 소리'인가를 깨닫고 좌절하게 된다. 노력은 재능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은 서글프지만 현실이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그런 일 말이다.
지금부터 써 내려갈 이야기는 재능을 가진 이와 그렇지 못했던 사람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두 명의 야구선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야구 천재' 조시 해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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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황을 딛고 돌아온 조시 해밀턴 |
ⓒ2007 신시네티 레즈 |
1999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템파베이 데블레이스는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고교야구 스타 조시 해밀턴을 전체 1순위로 지명한다. 뛰어난 컨택 능력과 장타력 그리고 강한 어깨와 빠른 발로 고교야구를 초토화시키며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던 해밀턴. 그런 해밀턴에게 '짠돌이' 구단 템파베이 데블레이스가 396만달러라는 당시 신인 계약 사상 최고의 금액을 사이닝 보너스로 안겨준 것은 별로 놀랄 일도 못된다.
2000년 루키리그(프린스턴)에서 데뷔한 이 야구 천재는 56게임 동안 무려 82개의 안타를 때려 냈으며 10개의 홈런과 17개의 도루를 성공 시키는 놀라운 성적을 거둔다. 사람들의 기대가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 것이다. 이제 해밀턴에게는 메이저리그를 정복하는 일만 남은 듯보였다.
최악의 재능을 가진 데이비드 엑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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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정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데이비드 엑스타인 |
ⓒ2007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199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는 19라운드(전체 581순위)로 플로리다 대학을 졸업한 유격수 데이비드 엑스타인을 지명한다. 신장 5피트 7인치의 약 172cm의 작은 체구를 가지고 일반 학생 자격으로 플로리다 대학에서 야구를 했던 엑스타인을 무슨 생각으로 보스턴이 지명을 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데이비드 엑스타인은 야구 재능과는 거리가 먼 선수다.
엑스타인은 보스턴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열심히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노력으로도 도저히 안 되는 게 있기 마련이다. 엑스타인은 유격수를 맡고 있었지만 어깨가 약했기 때문에 송구에 큰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엑스타인이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에도 계속 따라다니게 된다.
보스턴 산하 AAA 포터킷 레드삭스에서 한차례 방출을 당하며 애너하임 에인절스(현재 LA 에인절스)로 옮긴 엑스타인은 비록 신이 주신 타고난 재능은 없었지만 눈물겹도록 엄청난 노력을 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 4시즌 동안 502개의 안타와 4할이 넘는 높은 출루율 그리고 112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2001년 기어코 메이저리그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한다.
엇갈린 야구인생
조시 해밀턴은 데이비드 엑스타인에게는 신이 허락하지 않았던, 야구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다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엑스타인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그 한가지를 해밀턴은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것은 이 두 선수의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해밀턴에게는 없었지만 엑스타인에게 있었던 그 한가지는 바로 '야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었다.
야구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던 해밀턴은 어린 나이에 일군 성공에 도취해 술과 도박에 빠져들어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급기야 마약까지 손을 대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하늘이 내려준 완벽했던 야구 재능은 약물과 알콜로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는 것이 양키스의 우승 만큼이나 쉬워 보였던 해밀턴은 2003년 '마약 상습 복용' 혐의로 메이저리그 사무국으로부터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야구에 대한 뜨거운 열정 이외에는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던 데이비드 엑스타인은 그 열정 하나로 끈질기게 야구를 해내며 월드시리즈 우승을 두 번이나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약한 어깨 때문에 에인절스에서 버림을 당하기도 했지만 야구를 하는 내내 숱한 역경과 싸워야 했던 엑스타인에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2005년 에인절스를 떠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계약한 엑스타인은 2006년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며 월드시리즈 MVP까지 오르게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소질없는 선수라고 놀림을 받았던 엑스타인이 월드시리즈를 정복한 것이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야구를 하지 못하는 동안 해밀턴은 자신에게 야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야구가 자신에게 목숨만큼이나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해밀턴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야구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친듯 훈련했다. 해밀턴에게 야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생긴 것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해밀턴이 더 이상 마약을 복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게 내렸던 징계를 철회한다.
2007년 룰5 드래프트를 통해 템파베이 데블레이스에서 시카고 컵스를 거쳐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된 조시 해밀턴은 스프링캠프에서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며 개막전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다. 무려 4년간 그 어떤 야구 경기에도 나올 수 없었던 해밀턴이 메이저리거가 된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그 기적을 만들어 준 것은 해밀턴의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바로 해밀턴이 가슴 속 깊이 품고 있던 '야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었을 것이다.
'열정'이라는 이름은 데이비드 엑스타인과 조시 해밀턴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을 이렇게 연결시켜줬다. 그리고 2007년 4월 24일 서로 다른 길을 힘겹게 걸어온 이 두 선수는 세인트루이스의 홈구장 '뉴 부시 스타디움'에서 처음으로 만난다.
굴곡 많았던 두 선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들의 열정이 만들어낼 감동의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될 것이다. 서두에 재능을 뛰어넘는 것은 기적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어쩌면 재능은 아무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열정이라는 위대한 이름 앞에서는 말이다.
/이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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