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급한 한은 '경제학 원론'도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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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이다. 어지간해선 경제학 원론이 가르치는 바를 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29일 한은은 경제학 원론을 벗어났다. 국채시장에 직접 개입한 것이다. 시장에서 결정돼야 할 장기 금리를 의도적으로 낮추기 위해서였다. 경제학 원론에선 단기금리는 몰라도 장기금리는 통화 당국이 조절할 수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국채시장에 한은이 개입하는 건 ‘외도’다. 10년 뒤, 20년 뒤 장기 금리란 그 나라 경제의 ‘실력’을 반영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은이 국채시장에 개입하길 꺼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은의 국고채 매입은 2005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외환 위기 이후로도 일곱 차례밖에 되지 않았다.
따라서 한은이 이처럼 ‘무리수’를 둔 것은 최근 채권시장의 움직임이 그만큼 심상찮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김석동 재정경제부 제1차관이 “시장 불안을 좌시하지는 않겠다”고 구두 개입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당국의 개입이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의 진원지가 내부가 아니라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부실이란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채권시장 쏠림 왜 생겼나=달러와 원화 값이 들쭉날쭉하면서 외국인이 채권에 투자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금리는 선진국 금리보다 높다.
따라서 외국인이 달러를 가져와 원화로 바꾼 뒤 국내 채권을 사면 금리차만큼 이익을 본다. 이 이익이 비용보다 크면 외국인의 투자가 늘게 마련이다.
비용은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비용 ▶원화 값 하락(환율 상승)으로 입을 손실 ▶채권 값 하락(금리 상승)으로 입을 손실 등 세 가지의 합계다. 그동안 국내 금융시장은 (외국인 입장에서)비용이 수익보다 작았다. 조선업계 호황 등으로 달러가 넘치면서 달러를 원화로 바꾸는 비용이 싸졌다. 세계적 달러 약세에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돼 원화 값은 너무 올라 탈이 날 정도였다. 외국인의 매수로 국채 값도 안정됐다.
산은자산운용 김만수 채권운용팀장은 “삼박자가 맞으니 외국계 은행은 본점에서 달러를 가져와 국채에 투자해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을 했다”고 말했다. 여기에 스와프라는 파생금융상품이 쏠림을 부추겼다. 파생상품은 본래 위험을 회피하고자 만든 장치다. 하지만 (외국인 채권 투자) 비용이 수익보다 작은 상황이 이어지자 한 방향으로만 쏠리면서 위험을 키웠다.
◆외부 충격에 ‘역 쏠림’=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이 현실화하자 미국·유럽 금융회사가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 주식을 대거 팔았다. 이는 곧바로 국내 주가 급락과 원화 값 하락 (환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달러가 귀해지자 외국계 은행도 국내 달러 공급을 중단했다.
달러가 없으니 원화로 바꿔 채권을 살 여력도 급격히 줄었다. 여기에 펀드로 예금 돈이 빠져나가자 국내 은행이 자금 조달을 위해 양도성예금증서(CD)와 금융채를 대거 발행했다. 그러자 시장엔 채권 공급이 넘쳤다. 대신 채권 수요는 급격히 줄어 채권 값은 하락(금리 급등)했다.
외국인 채권투자자 입장에선 줄곧 떨어지던 비용이 순식간에 오름세로 돌아선 것이다. 우리은행 박동영 자금부장은 “최근 채권시장의 요동은 과도하게 ‘사자’로 쏠렸던 (외국인)투자자의 선택이 외부 충격이 오자 반대방향(‘팔자’)으로 다시 쏠린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한은 개입 효과는=급한 불은 끌 수 있겠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게 시장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쏠림의 원인이 해소되지 않는 한 작은 외부 충격에도 시장이 다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안병찬 국제국장은 “달러 파생상품 거래가 줄어야 하는데 조선업계 등의 호황이 계속돼 쉽 지 않다”고 말했다. 은행이 CD·금융채 발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이 역시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충격의 원인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대신증권 문병식 수석연구원은 “현재 고정금리인 서브프라임 금리가 내년 상반기 변동금리로 대거 전환되면 이자 부담이 커져 부실이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부실이 현실화하면 이미 늦기 때문에 (한은이 외환보유액을 푸는 등) 지금부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경민·김준현·염태정 기자
▶정경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jkm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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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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