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장난하나?? -_-;;

딴 사람은 몰라도, 민한신과 현승옹, 대호, 민호는 팍팍 올려줘야 되는거 아니냐??
진짜..그룹 운영도 그렇고..구단 운영 더럽게 하는구만..-_-;;

성적 잘 내도 보상 없으면 누가 죽어라 뛰겠냐??
제발 정신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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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협상 통해 스스로 타선 기 죽이는 롯데

[JES 허진우] 롯데 팬들은 자이언츠 타선을 두고 '이대호와 여덟 난장이'라는 비아냥거리곤 한다. 프로야구 대표타자 이대호에 비해 나머지 타자들의 성적이 쳐진다는 자조섞인 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2008시즌 연봉 재계약 협상 테이블에서 롯데 구단 스스로가 이대호를 비롯, 타선 주축선수들을 난장이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점이다. 7일 현재 롯데는 2008시즌 재계약자 56명 중 46명과 계약을 마쳤다.

미계약자는 투수 염종석·손민한·최향남, 야수 박현승·이대호·최기문·강민호·이승화·김주찬·이원석 등 10명. 모두 투타의 핵심선수들이다.

이들은 모두 지난해 12월 말 한번씩 협상테이블에 앉았지만 곧 허탈함에 일어서야 했다. 구단의 제시액이 객관적인 기준에 못 미친다는 여긴 때문이다.

특히 투수에 비해 야수들은 낮은 인상률을 제안받아 더욱 상처를 받았다. 롯데 관계자에 따르면 포수 강민호는 인상액 1000만원이라는 소리에 웃기만 했다는 것이다.

2007시즌 강민호는 타율 2할7푼1리 14홈런 68타점을 기록했다. 4500만원이 오른 2006시즌 성적(타율 2할5푼1리 9홈런 53타점)에 비해 한층 성장한 기록이었지만 롯데는 팀성적을 기준삼아 인상폭을 최대한 낮춘 것이다.

미계약 야수 모두 강민호와 같은 생각이다. 일각에서는 타자들 연봉을 줄여 이대호에게 몰아주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이대호도 그다지 높은 인상율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연봉 경쟁을 벌였던 김태균(한화)도 삭감안을 통고받을 정도로 시장 상황이 열악한 탓이다.

이러한 현상은 롯데 재계약 방침에 따른 것이다. 롯데는 △점점 어려워지는 경영환경 △나아질 것없어 보이는 시장환경 △팀성적에 따른 공동 책임 부여 △현 연봉에 걸맞는 성적 미비 △과거 사기 진작 차원으로 성적 이상으로 인상 등의 이유를 들어 재계약에서 삭감 폭은 높이고 인상률은 낮춘다는 입장이다.

롯데 이상구 단장은 " 선수들은 자신의 성적을 기준으로 인상을 바라지만 구단으로서는 팀 성적을 기준으로 연봉 협상을 하는 것 " 이라며 " 무엇보다 자신이 받는 연봉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 고 말했다.

이어 이 단장은 " 지지난해와 지난해 팀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인상 폭을 높인 것은 사기 진작 차원에서였다 " 며 " 2008시즌 계약은 그동안 받았던 연봉을 현실화하게 되는 셈 " 이라고 배경설명을 했다.

롯데는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는 23일 사이판으로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에 모든 선수의 연봉 계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허진우 기자 [zzzmaster@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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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약한 4번 타자? 그러나 '자갈치 근성' 빛났다

1984년에 데뷔해 1993년까지 10시즌동안 통산 40개, 시즌 평균 4개씩의 도루만을 기록했던 자이언츠의 4번 타자 '자갈치' 김민호. 그가 나이 30대 중반에 들어선 94년 별안간 21번이나 베이스를 훔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9월 3일 그와 전화 연결이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물은 것이 그 사연이었다. 그는 반 호흡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 20-20을 한 번 해보려고 그랬죠. 뭐 해놓은 것도 없고…. 홈런이야 언제든 칠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우선 도루부터 채워놓고 보자' 하고 도루 스무 개를 해놨는데, 결국 홈런이 모자랐죠. "

" 그렇군요. 그 해 홈런이 15개에서 멈췄죠? "

" 15개? 15개로 기록이 돼있습니까? 나는 18개쯤 했다고 생각했는데…. "

4번 타자 김민호의 '자갈치 타법'

▲ 김민호의 선수 시절 모습.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대학시절부터 4번을 치기는 했지만, 김민호는 '슬러거'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왼손타자면서도 밀어치는 스타일로 총알 같은 타구를 좌중간으로 날리는 중거리 포에 가까웠다.

100m를 12.3초에 주파하는 발도 빠른 편이었고, 1984년 그가 입단한 자이언츠는 아직 김용희와 김용철의 '용용포'가 교대로 4번을 나누고 있었다. 아직 주전으로 성장하지 못한 김민호는 하루건너 하루나마 2번이나 7·8번쯤에 기용되곤 했다.

그러나 백업 유격수로 간간히 나서던 그가 신임감독 어우홍의 지원 아래 주전 1루수와 4번이라는 중책을 맡기 시작했던 88년부터 그는 스스로를 4번 타자로 다듬기 시작했다.

경기흐름을 끊거나 부상의 우려가 있는 도루나 무리한 주루플레이를 자제했고, 타점을 만들어내는데 집중했다. 오랜 세월 밀어치는 습관이 배어있던 오른 손목을 꺾어 강하게 당겨 치는 타격을 위해 그만의 타격 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무렵부터 그는, 투수가 투구동작에 들어가는 순간 방망이를 밑으로 내려 홈플레이트를 건드리는 듯한 예비동작을 시작했고, 그와 함께 한쪽 다리를 들었다가 내디디며 몸을 축으로 공을 당기며 체중을 실어 날렸다. 마치 몸의 한 부분인 듯 단단하게 휘돌려진 방망이에 맞은 공은 순간적으로 중계화면에서 사라졌고, 순식간에 우익수와 중견수 사이를 면도날처럼 가르곤 했다.

열정의 자갈치, 1992년 정상에 서다

88년, 90년, 91년, 꾸준히 3할대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 그리고 60~70개 안팎의 타점을 만들어내며 김용희와 김용철의 대를 잇는 자이언츠의 4번 타자로 자리 잡은 그가 가장 화려하게 빛났던 것은 92년이었다.

그 해, 19세의 신인 염종석이 터줏대감 윤학길과 나란히 17승을 올리며 시즌을 이끌었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박동희가 혜성처럼 타오르며 마지막 한 발의 진군을 독려했다. 타선에서도 신인 급의 전준호·이종운·김응국·박정태가 나란히 3할 대 방망이를 휘두르며 부산 팬들에게 벼락같은 환희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해 팀의 중심은 .322의 타율에 16개의 홈런과 88개의 타점을 때려내며 차곡차곡 승기를 꽂아온 '남두오성(南斗五星 ; 그 해, 팬들이 전준호·이종운·김응국·박정태와 김민호를 합쳐 부른 애칭)'의 가장 큰 별 김민호였다.

유난히 결정적인 승부에 강했던 그는 우승의 길목에서도 결정적인 한 방을 책임져주곤 했다. 단기전의 절대강자 해태 타이거즈와 맞섰던 플레이오프 5차전 1회초 첫 타석에서 상대선발 문희수로부터 빼앗아냈던 석 점짜리 결승 선제홈런이나, 이글스와의 한국시리즈 1차전 1회에 기선을 제압했던 선제 2타점 적시타는 그 대표적인 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 자이언츠 코치 시절의 김민호.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그 해 정규시즌 3위에 그치고도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다시 한국시리즈를 정복한 자이언츠의 경기를 보면서 '고교야구선수들 같다'는 표현을 한 이가 있었다.

때로는 혈기가 넘쳐 경기를 망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마치 한 경기라도 지면 시즌이 끝난다는 듯 사생결단을 하고 달려들어 악을 쓰고 환호성을 올리는 모습에서 풋풋하기까지 한 열정이 넘실댔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시즌 내내 더그아웃에서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지 못하고 악을 쓰고 박수를 치고 침을 튀기며 허공으로 주먹질을 해댄 이가 김민호였다. 도무지 귀가 아파 더그아웃에 앉아있어도 자갈치시장에 와있는 듯하게 만든다는 그에게 일찌감치 신인시절부터 선배들이 붙인 별명이 '자갈치'이기도 했지만, 그는 목청으로, 다시 방망이로 후배 선수들에게 투지와 자신감과 사명감을 심어주는 팀의 중심이었다.

근성의 4번 타자, 박수칠 때 떠나다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 자이언츠 코치 시절의 김민호.

그러나 1995년. 다시 한 번 끓어올라 우승 목전까지 밀고 올라가며 숱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던 그 해, 자이언츠에서 김민호의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10년 가까이 당연한 듯 그가 지켜왔던 4번, 그리고 1루수 자리에는 마해영이라는 훤칠한 젊은이가 대신 들어서있었고, 그런 풍경의 어색함마저 금세 새 4번 타자가 펑펑 때려내는 홈런포의 환희에 가려지고 흐려졌다.

" 크게 부상이라든가 뭐 그런 게 있었던 건 아니고…, 말하자면 세대교체 과정에서 그렇게 된 거죠. 그 때 좋은 신인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마)해영이하고 (임)수혁이, 또 지금은 삼성에 가있는 (김)종훈이, 그런데 그 녀석들 보니까, 그냥 되겠다 싶기도 했고….'

" 후배들에게 양보하는 마음도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

" 글쎄…, 뭐 사실 제 목표는 40살까지 선수생활 하는 것이긴 했는데, 또 그 녀석들 보면서 다른 생각을 좀 하게 된 것도 있었죠. 그동안 팀에 좋은 1루수 신인들이 많이 들어왔었거든요. (임)경택이, (박)상국이, 또 195cm짜리 대형선수였던 유충돌이. 뭐 그런 친구들이 결국 나 때문에 사장된 셈이기도 한데, 이제 정말 때가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러면서 이제 지도자로 다시 출발하는 것도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박수 쳐줄 때 떠나자는 생각을 한 거죠. "

자신은 있었다지만, 아무래도 자기 생각보다 조금씩 느려지던 서른다섯 줄의 방망이. 또 '미스터 롯데'의 위세에 눌려 날개도 펴지 못하고 흘러가버린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 이제 나타난 자신보다 나을 수 있는 후배에 대한 믿음과 새 출발에 대한 의지. 그는 선수생활의 마무리와 지도자생활의 준비를 시작했고, 44경기에만 얼굴을 비친 이듬해 1996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정리했다.

그가 남긴 기록, 106개의 홈런과 .278의 통산타율, 그리고 606 타점. 좋은 성적이지만, 올스타전 MVP를 한 번 차지한 것을 제외하면 정말 말년에 20-20이라는 훈장이나마 욕심이 났을 만큼 두드러지는 고비가 없는 성적이다. 그의 시대를 주름잡았던 장종훈이나 김성래과 비교해보자면 더욱 초라해지는 면면이며, 그래서 그에게 '8개 구단 중 가장 빈약한 4번 타자'라는 비아냥을 보내는 이 마저도 있었다.

그러나 골 넣는 골키퍼를 가진 축구팀이 결코 최강의 자리에 서기 어렵고, 외곽슛을 펑펑 터뜨리는 센터를 가진 농구팀이 승리하기 어려운 법이다. 마찬가지로 야구에서라면 성적과 기록에 앞서 적절한 고비에서 태산처럼 버티며 투지와 자신감의 근거가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 4번 타자다.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그것에 맞추어가려고 했던 4번 타자, 그래서 다른 팀의 누구에게 힘과 재능으로 앞설 수는 없었을지라도 사명감과 근성으로써 동료들과 함께 전진했던 중심타자 김민호의 중량감은 역대 최고의 수준에 가깝다.

'끝'을 생각하지 않는 근성도, 아름다운 '끝'을 만들 줄 아는 슬기도 모두 귀하다. 그런데 그와의 전화통화를 맺으며, 그 두 가지가 사실은 아주 다른 것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이기보다는 그 이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데서 원인을 찾아야 옳으니까 말이다.

▲ again 1992

1992년 우승의 영광 재현을 다짐하는 자이언츠 팬들.

ⓒ 롯데 자이언츠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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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가 왜 프로야구 흥행을 좌우하나
[조선일보 2007-04-21 11:29]    

‘부산 갈매기’ 함께 부르며 관중 동원 1위… 자발적 응원은 영국 프리미어리그 방불

“부산 가~알매기, 부산 가~알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부산의 자영업자 김정환(37) 씨는 4월이 오면 휴대전화 통화 연결음을 ‘부산 갈매기’로 바꾼다. 그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서포터스 연합회 간사를 맡고 있는 광(狂)팬. 부산 홈 경기는 물론 서울, 수원 등으로 원정 응원도 다닌다. 김씨의 올해 가장 큰 소망은 롯데가 4위 안에 들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고 포스트시즌 경기를 펼치는 광경을 보는 것이다.

“요즘 신바람 납니다. 롯데, 시작이 좋지 않습니까? 개막 3연승에, 짜릿한 역전승도 있고. 초반이지만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구단에서 마케팅만 조금 받쳐주면 100만 관중 문제 없습니다.”

부산은 야구도시, 곧 구도(球都)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관중 동원에서 줄곧 선두권을 지켰다. 84년부터 89년까지 6년 연속 팀 관중 1위. 91년과 92년엔 2년 연속 100만 관중을 돌파했다.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건 84년과 92년, 두 차례뿐. 그래도 롯데 팬들은 꾸준히 사직구장을 찾았다.



95년 롯데가 마지막으로 100만 관중을 돌파(118만 576명)했을 때 한국 프로야구는 사상 최다 관중(540만6374명)을 기록했다. 98년 프로야구 관중은 263만9119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음해인 99년엔 다시 300만 관중(322만0624명)을 회복했다. 롯데가 관중 동원 1위(77만260명)를 기록해 줬기 때문이다. 95년과 99년 모두 롯데가 한국시리즈에 진출, 2위를 차지한 해다.

2000년대 들어 프로야구 관중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롯데 팬들이 경기장을 찾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과 2003년엔 각각 12만여명, 15만여명에 그쳤다. 2001년부터 2004년까지 롯데는 4년 연속 최하위에 머물렀다.

2005년 롯데는 5월 한때 단독 선두를 달리는 등 선전을 거듭하다 결국 5위를 차지하며 아깝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그래도 부산 팬들은 그 해 65만 여명(전체 2위)이나 야구장을 찾았다. 프로야구 전체 관중도 전년도(233만1978명)보다 45%나 늘어난 338만7843명 이었다. ‘롯데가 잘 해야 프로야구가 흥행에 성공한다’는 말은 결코 허튼 소리가 아니다.

부산 팬들이 야구에 미치는 이유는 뭘까? 부산 동명대 스포츠레저학과 전용배 교수는 “부산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야구장에서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작년에 부산 출신 군인 장병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휴가를 나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야구장 가는 것’이 ‘부모님과 밥 먹는 것’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부산 갈매기’를 따라 부르면서 부산 사람임을 확인하는 장소가 야구장인 것 같습니다.” 대구 출신인 전 교수는 “게임 진행 상황과 상관 없이 관중들이 자발적 응원을 하는 모습은 잉글랜드축구 프리미어리그를 능가한다”며 “이해가 안 가는 일이 많다”고 했다.

한양대 스포츠 산업학과 김종 교수는 “일찍부터 야구를 즐기는 일본 문화를 쉽게 받아들인데다 부산 지역에 특별한 놀이 시설이 없다는 점도 야구 열기가 높아진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서포터 윤형근(41) 씨는 “부산 사람들의 뱃사람 기질도 야구 열기에 한 몫 한다. 한번 불이 붙으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며 “95년엔 야구장이 만원이 되자 팬들이 굳게 닫힌 외야 철문을 용접기로 녹여서 들어온 일이 있습니다. 한번 한다면 하는 부산 사나이들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지난 2일 한국 갤럽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내 프로 야구단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구단은 삼성 라이온스로 조사됐다. 롯데는 3위. 하지만 부산 팬들은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김정환 씨는 “전국에서 가장 팬이 많은 팀은 롯데다. 잠실에 원정 응원을 가면 5분의 3은 롯데 팬이고 나머지가 홈 팀의 팬들”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지난 6일부터 8일까지 현대와의 수원 경기에는 홈 팀인 현대 팬들보다 롯데를 응원하는 원정 팬들이 훨씬 많았다. 8개 구단 중 연도별 관중동원 1위 횟수가 LG 트윈스(14회)에 이어 2위(9차례)지만, LG는 원정 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숫자가 포함된 것인 만큼 실제 관중 동원 능력은 롯데가 1위라는 게 부산 팬들의 주장이다.

올 시즌 롯데는 초반 10경기를 마칠 때까지 6승4패로 3위를 달리면서 일단 성공적인 출발을 했다. 팬들의 기대도 한껏 높아졌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롯데가 시즌 막판까지 4위권을 유지한다면 그동안 성적이 좋지 않아 야구장을 외면했던 잠재적 팬들을 끌어들여 올해 관중목표 400만 명 달성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석태기자 kos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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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선수단의 아름다운 동업자 정신

[일간스포츠 정회훈] '임수혁 선수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과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20일 사직구장. 현대-롯데전이 열리기 전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양팀 선수단이 덕아웃 앞에 정열한 가운데 롯데 주장 손민한과 현대 주장 이숭용이 홈 플레이트 쪽으로 걸어 나왔다. 손민한의 손에는 묵직한 무엇이 들려 있었다. 감사패였다.

단순한 친선도모나 감사의 뜻이 아닌 그 안에는 진한 '동료애'가 묻어 있었다. 다름 아닌 아직도 의식 불명 상태로 투병 중인 전 롯데 선수 임수혁을 대신해 롯데 선수단에서 감사의 뜻을 전한 것. 현대는 2001년부터 매월 60만원, 연간 600만원의 성금을 모아 롯데 상조회에 기탁하고 있다.

임수혁은 2000년 4월 17일 잠실 LG전에서 경기 도중 호흡 곤란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당시 각 구단에서 성금이 답지했다. 그러나 벌써 7년째.

임수혁이라는 이름이 프로야구 팬들 사이에서 차츰 잊혀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일일호프나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등을 통해 매년 2000만원씩 모아 임수혁 가족에게 전달하고 있는 롯데 구단에서도 선수들 중 임수혁과 함께 뛴 선수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하물며 타 구단에서 그를 잊지 않고 매달 성의 표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 정성과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임수혁에 대한 성금을 모아 전달하는 팀은 현대가 유일하다.

현대 관계자는 "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임수혁이 의식을 찾을 때까지 계속될 것 " 이라고 설명했다.

동업자 정신이라는 게 있다. 매일 너를 쓰러뜨려야 내가 사는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경기가 끝나면 그라운드에서 발을 붙이고 사는 동료요, 친구라는 뜻이다.

장내 아나운서의 감사패 전달 소개 방송이 나가자 사직구장의 팬들은 현대 선수들이 보여준 변함없는 동업자 정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부산=정회훈 기자 [hoony@ilg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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