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KNOW]포수, 삼진 후 3루로 공 던지는 이유는?

[데일리안 이충재 기자]

◇ ⓒ데일리안 스포츠DB

지난 27일 사직구장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한화이글스 정규리그 18차전. 10회초 선두타자로 나선 한화 윤재국이 롯데 투수 강영식의 낮은 공에 헛스윙 삼진아웃을 당했다. 공을 잡은 포수 최기문은 3루로 공을 던졌다. 공은 ▷3루수 이대호 ▷유격수 박기혁 ▷2루수 조성환 ▷1루수 김주찬의 손을 거쳐 다시 투수에게 돌아왔다.

야구경기에서 삼진을 잡은 뒤 포수가 3루로 공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미 타자를 '삼진아웃'시켰는데도 3루로 공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종의 세레모니…야수들 '경직된 몸' 풀어주기 위해

투수-포수 배터리가 '삼진을 잡은 뒤 3루로 공을 던져야 한다'는 야구규정은 없다. 이는 야구의 '관례'인 셈이다.

이와 관련, 한국야구위원회와 프로야구선수 등 야구관계자들은 '삼진→3루 송구'에 대해 크게 2가지 이유를 내놨다.

첫 번째는 '야수들의 경직된 몸을 풀어주기 위함'이다.

투수가 타자를 삼진아웃 처리할 경우, 투수-포수 외에 야수들이 공을 잡을 기회가 없게 되고, 야수들의 몸이 경직되거나 긴장이 느슨해질 수 있다. 때문에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오는 시차를 이용해 송구 릴레이 하면서 공에 대한 감각을 유지하는 것.

야구가 어떤 스포츠 보다 순간집중력과 긴장감이 요구되는 종목인 만큼, 공에 대한 감각을 유지시켜주기 위한 선수들 서로의 배려인 것이다.

야구위원회 홍보국은 " 투수가 삼진아웃을 잡는 동안 야수들은 몸이 경직될 수 있다 " 면서 " 삼진아웃 후 포수가 공을 내야로 돌리면, 야수들은 몸도 풀고, 긴장감을 끌어 올릴 수 있다 " 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유는 '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함'다.

투수가 삼진아웃을 잡았다는 것은 '최선의 수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야수들은 송구 릴레이를 펼쳐 팀워크를 다지고, 파이팅을 한다는 것.

때문에 야수들은 송구 릴레이와 함께 " 파이팅 " , " ○○○(투수) 나이스 피칭 " 등을 외치며 삼진아웃을 잡은 투수를 격려한다. 고교야구나 사회인야구에선 야수들이 응원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결국 '투수의 꽃'인 탈삼진에 대한 동료들의 '작은 세레모니'인 셈이다.

" 삼진 후 1루에 던져도 되는데, 3루가 더 편해! "

하지만 포수가 삼진아웃을 잡은 뒤 무조건 3루로 공을 던지는 것은 아니다. 주자가 1루에 있을 경우, 도루나 송구실책 등을 우려해 '관례'를 생략하기도 한다.

또한 포수는 삼진아웃 후 공을 1루수에게 던지기도 한다. 이 경우 역시 '3루 송구'와 같은 의미를 지니지만, 공이 역방향(1루수→2루수→유격수→3루수→투수)으로 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에 대해 선수들은 " 3루에서부터 공을 돌리는 것이 더 편하고 익숙하기 때문에 포수가 3루로 공을 던져주는 경우가 더 많은 것 " 이라고 입을 모았다.

야구위원회는 " 선수들은 삼진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아웃카운트를 하나 잡았을 때에도 송구릴레이를 한다 " 면서 " 선수들의 몸에 베인 습관 같은 것 " 이라고 말했다. 또한 내야수가 공을 손으로 '쓱싹쓱싹' 문질러서 투수에게 건네며 투수에게 파이팅을 불어넣는 것 역시 관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편 '낫아웃(strike out not out)'상황에선 세레모니 보다 타자를 아웃시키는 것이 우선된다. 이 경우 포수가 그 공을 잡아 타자를 태그(tag)하거나 타자가 1루에 도달하기 전에 공을 1루로 보내야 아웃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데일리안 스포츠 편집 김태훈 기자 [ktwsc28@dailian.co.kr] - Copyrights ⓒ (주)이비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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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성이 형님..만호 형님과 함께 열심히 뛰어 주시길..

충분히 1군에서 뛸 만한 실력인데, 운이 없었기도 하고, 뭔가 살짝 모자란 느낌 때문에 매번 밀리셨는데,
롯데 와서 애들한테 좀 허슬 플레이의 귀감을 보여주시길..
(2군에 주로 있으셔서 그런지, 1군 경기 할 때는 참 열심히 뛰시더라..)

그나저나 석진이 형님은 그냥 롯데에서 선수생활 마무리하셨으면 좋았을텐데,
어차피 임경완, 나승현, 이왕기, 배장호 때문에 전력 외로 분류되셨었고,
(박석진 선수 데리고 올 때에는 어린 선수들에게 노하우 전수 같은 것도 바라고 데려왔었을터이나,
 지금 롯데 불펜 사정상 박석진 선수 1군에 올려놓기는 무리였음..)

만년 유망주 소리만 듣던 인호 형님..
주장 하시고 나서는 완전 내리막이었는데..-_-;;
그래도 아직 기회는 있을 터이니, 정신 차리셔서 열심히 뛰셔서 꼭 성공하시길..

준석이 보세요..
롯데에서는 맨날 삼진 먹고 엉뚱한 거 하다가,
지금 두산 가서는 5번 잘만 치고 있잖아요..ㅡㅠ

암튼..중요한 건..오늘 졌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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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롯데맨' 최길성 "사직구장에서 뛰고싶었다"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07-31 19:49
 

(수원=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사직구장 같은 데서 뛰고 싶을 겁니다"

프로야구 트레이드 마감시한을 이틀 앞둔 29일 LG에서 롯데로 둥지를 옮긴 최길성(29)은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최길성은 31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현대와 방문경기를 앞두고 타격연습을 하다가 "유니폼 잘 어울리죠?"라면서 평소와 같이 밝은 표정으로 인사했다.

최길성은 트레이드에 대한 소감을 묻자 "정든 팀을 떠난다는 것은 싫은 일이지만 관중이 많은 롯데로 가서 기쁘다. LG도 팬이 많지만 롯데는 더 많다. 사직구장에서 개막전할 때 정말 대단했다. 야구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그런 곳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길성은 이틀 전 외야수 최만호와 함께 롯데 박석진,손인호와 2대 2 트레이드로 팀을 바꿔 `갈매기 군단'에 합류하게 됐다.

그는 오랜 2군 생활을 하다가 지난 해 83경기에서 타율 0.256, 4홈런, 33타점을 올리면서 1군에 자리를 잡았다.

외야수와 1,3루수를 가리지 않고 포지션을 변경하며 살아남아 온 그는 지난 해 후반기 맹활약을 하며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며 주전으로 성장하는 듯 했다. 그 결과 연봉도 2천600만원에서 3천500만원으로 35% 올랐다.

하지만 올 시즌 주로 대타로 나오면서 31경기에서 45타수 8안타, 타율 0.178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최길성은 "혼자 몸이니 이사하는 것도 가볍다"면서 "LG에서는 (최)동수 형보다 잘 못했다. 기회를 잡도록 새로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최길성은 이날 최만호와 함께 1군에 등록돼 7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해 롯데 유니폼을 입고 신고식을 치렀다.

kimy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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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고교야구 최강팀은?(7) 1978년 부산고
스포츠2.0 | 기사입력 2007-07-11 17:56   기사원문보기
1978년 부산고 야구 전성기를 이끈 양상문의 부드러운 피칭 동작.(사진=중앙일보)
부산 야구의 양대 라이벌은 부산고와 경남고다. 부산은 ‘야구도시’로 통한다. 강병철 롯데 감독은 “부산고, 경남고 등 명문교들이 라이벌전을 펼치자 많은 시민들이 야구에 관심을 가진 게 부산이 야구도시가 된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학교끼리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1947년 황금사자기대회를 앞두고 경남중의 장태영이 어느 학교 학생들에게 경기 전 폭행을 당한 웃지 못할 일화도 있다. 부산고는 1970년대까지 라이벌 경남고와 부산상고에 밀렸다. 경남고는 1977년까지 4대 전국대회에서 10차례 우승했지만 부산고는 김소식과 하일이 뛰던 1962년 청룡기대회 우승이 전부였다. 그러나 라이벌 판도는 1978년부터 바뀐다. 부산고에는 고교야구 팬들이 그때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안경잡이 왼손투수가 한 명 있었다. 양상문이었다.

양상문의 구위는 뛰어났다. 1978년 고교야구에서는 부산고가 최강이었다. 김정수와 김경표의 신일고, 오른손 김영균, 왼손 윤수봉이 마운드의 쌍두마차였던 서울고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신일고 출신의 양승호 고려대 감독은 “프로 시절만 본 팬들에겐 낯설겠지만 고교 시절 양상문의 직구 스피드는 시속 145km를 넘었을 것이다. 커브, 슬라이더 등 변화구도 뛰어났다”고 말했다.

박흥식 삼성 코치는 대구중 시절부터 부산중의 양상문과 상대했다. 박코치는 “양상문은 중학교 때부터 제구력이 완벽했다. 타자를 갖고 노는 수준이었다. 타격도 뛰어났고 주루, 특히 슬라이딩이 기가 막혔다. 또래보다 훨씬 고급 야구를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고교투수들은 볼카운트 0-2에서는 거의 직구를 던졌다. 그러나 양상문은 이 카운트에서도 자유자재로 변화구를 던졌다.

박코치는 “1978년을 전후한 몇 년 동안 양상문만한 컨트롤을 보인 투수는 없었다. 이때는 부산 야구 전성기였는데 오른손투수에 경남고 최동원이 있었다면 왼손투수로는 부산고 양상문이었다”고 말했다.

양상문은 1978년 5월 대통령배대회 결승에서 대구상고 타선을 3안타로 막고 3-0 승리를 이끌었다. 부산고의 이 대회 첫 우승이었다. 부산고는 6월 청룡기대회 결승에서 경북고를 7-0으로 누르고 2관왕에 올랐다. 승리투수는 물론 양상문. 양상문의 5안타 완봉승이었다. 전국대회 우승은 이 두 번이 전부다. 이해부터 문교부는 전국체육대회를 제외한 전국 규모 대회 출전을 1년에 3회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전국대회 우승은 두 번뿐이었지만 <한국야구사>는 1978년 고교야구편 제목을 ‘부산고, 고교야구 정상에’로 붙이고 있다.

양상문은 고향에서 열린 화랑기대회 결승에서도 경기고에 3-0 완봉승을 거뒀다. 이 경기에서 양상문은 삼진 12개를 잡아내며 4안타, 볼넷 1개를 내줬는데 주자 2명을 내보낸 이닝은 한 번도 없었다. 9회말 아웃 카운트 3개를 모두 3구삼진으로 잡았다. 그 가운데 하나는 타자가 배트를 휘둘러 보지도 못하고 두 눈 뜬 채 당한 것이었다. 마지막 타자 송진선은 모두 헛스윙 스트라이크로 삼진 처리했다.

양상문 외에 3번 타자로 활약한 포수 김호근은 대통령배대회, 청룡기대회, 화랑기대회에서 모두 MVP로 뽑혔다. 김민호, 한영준, 이종운, 조성옥 등 뒷날 롯데의 주력선수가 되는 이들이 1978년 부산고 멤버였다. 양상문은 “우리 팀은 1980년대 초 선린상고처럼 화려한 멤버는 아니었다. 하지만 1978년 팀에는 비밀이 있다. 이때부터 수비에 ‘팀 플레이’가 도입됐다. 배터리와 내야수들이 미리 약속된 플레이를 했다. 나도 견제구로 주자를 많이 잡았다. 야수 아홉 명이 마치 기계처럼 움직였다”고 회상했다.

광주일고와 부산고

올시즌 현재 전국 고교야구팀은 56개다. 그동안 해체된 팀까지 포함하면 80개가 넘는 고교야구팀이 야구사를 장식하고 있다. 많은 학교 가운데 뛰어난 투수를 가장 많이 배출한 학교로는 부산고와 광주일고를 꼽을 수 있다. 프로에서 50승 이상 투수만 따져도 부산고는 양상문(56승), 박동희(59승 58세이브), 강상수(52승 75세이브), 염종석(88승), 손민한(79승), 주형광(87승)을 낳았다. 젊은 투수들 가운데에는 장원준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프로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김종석, 권영일 등도 고교 때는 초고교급 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광주일고는 선동열(146승 132세이브)의 이름을 드는 것으로 족하다. 그러나 선동열 외에도 이상윤(65승), 문희수(59승), 이강철(152승), 성영재(58승)가 있다. 최근 들어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투수들이 적지만 해외로 눈을 돌리면 서재응(탬파베이 데블레이스)과 김병현(콜로라도 로키스)이 있다. 서재응과 김병현은 전성기에는 메이저리그 3선발급으로 꼽힌 투수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백차승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는 부산고 출신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다. 현재는 외야수인 추신수는 고교 시절 팀 내 에이스와 4번 타자를 겸한 만능선수였다.

SPORTS2.0 제 56호(발행일 06월 18일) 기사

최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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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 마산은 겁나던걸..-_-;;

그리고 광주에서 10-9로 진 그날도, 롯데 응원하던 여성분 한 분이,
마지막에 역전당할 때, 다른 관중 한 분과 싸우던 장면이 중계화면에 잠깐 잡혔었는데,
참..그러고보니, 4:0에서 4:7로 역전하니까 물병 날아오더라..-.-;;

암튼..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아저씨들..술 적당히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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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과 달라진 프로야구 관중풍경
[한겨레 2007-05-24 18:39]    

[한겨레]
1986년 10월22일 밤 9시45분 대구구장 앞.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이 해태에게 5-6 역전패를 당하자, 삼성 팬 2천여명이 “타도 해태”를 외쳤다. 급기야 흥분한 몇몇 관중들은 45인승 해태 선수단 버스에 불을 질렀다. 1차전 광주 경기에서 삼성 투수 진동한이 술 취한 관중에게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은 데 대한 ‘보복’이었다.

버스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관중들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서야 해산했다. 당시 난동이 어찌나 살벌했는지, 지금도 야구계에선 ‘대구 폭동’으로 불린다.

1990년 8월26일 잠실구장에선 LG-해태 경기 도중 관중 500여명이 그라운드로 난입했다. 승부가 LG쪽으로 기울어지자 흥분한 3루쪽 해태 팬들이 먼저 경기장으로 내려왔고, 이에 맞선 LG 팬들과 충돌했다. 관중 10여명이 다쳤고, 경찰은 1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07년 5월 19, 20일. 주말을 맞아 잠실 등 전국 4개 구장에는 이틀간 17만명이 몰려들었다. 사직구장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지만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다. 특히 롯데는 주말 3연전을 모두 졌는데도 이틀 연속 사직구장은 만원을 이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진형 홍보팀장은 “과거 야구장 관중들은 승패에 집착하는 경향이 심한 반면, 요사이는 즐기러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진단했다. 이승재(41·의사·경기 수원시)씨는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를 즐기게 되면서 관중문화도 성숙해진 듯하다”고 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관중 난동사건은 시즌마다 심심찮게 일어났다. 깡통이나 오물 투척은 예사. 김현준(36·회사원)씨는 “학창시절 야구장에 간다면 부모님이 ‘깡통이나 병 맞는다’며 말렸다”면서 “부산이나 광주로 원정 응원을 가면 홈팬들에게 맞을까 봐 숨죽이고 경기를 봐야 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최근엔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삼아 찾을 정도로 야구장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관중 드세기로 유명한 부산 사직구장과 마산구장의 변화가 눈에 띈다. 서정근 롯데 홍보팀장은 “주 관중이 과거 30~40대 아저씨들에서 요즘엔 10대 후반~20대 연인과 젊은 부부로 바뀌었다. 특히 여성관중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야구장에 가족석이 등장한 것은 이런 변화의 한 단면이다. 2002년 인천 문학구장과 지난해 사직구장에 ‘스카이박스’(가족 및 단체석)가 생겼고, 잠실구장엔 올해 1루와 3루측 관중석에 테이블이 놓인 가족석이 만들어졌다. 김정균 두산 마케팅 팀장은 “올해 만든 가족석이 50석으로, 좌석당 1만5천원인데 거의 매 경기 매진된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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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도' 하는 선수들 '재밌네'..송진우→대타로 끝내기 안타
[스포츠조선 2007-05-24 20:25]    
조웅천→ 박재홍 대신 좌익수

금민철→ 볼넷 얻고 득점까지

 
◇ 프로야구에서 종종 투수가 타자로 '외도'하는 현상이 벌어져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지난 2001년 한화 송진우가 청주 LG전서 대타로 나와 끝내기 안타를 터뜨리고 있다. <스포츠조선DB>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투수 박찬호(뉴욕 메츠)와 김병현(플로리다) 등이 가끔 안타를 치고 출루하는 모습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지명타자 제도가 없는 NL(내셔널리그)에선 투수도 타석에 서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국내에선 기본적으로 투수들은 마운드에만 오르면 된다. 하지만 투수들도 경기 막판 이따금씩 타자로 나서는 경우가 있다.

 감독이 라인업에서 이런저런 사유로 지명 타자를 포기하는 순간 투수도 NL에서처럼 타석에 들어서 방망이를 휘둘러야 하는 것이다. 지명타자는 투수가 마운드에만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투수로만 대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지명타자가 경기 중 야수로 포지션을 바꿀 수는 있으며, 그 경우 투수는 타석에 들어서야 한다.

 지난 수요일(23일) 대구 삼성전에 출전한 SK 투수들이 '외도'를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비롯됐다. SK 김성근 감독은 8회 수비 때 투수를 조웅천에서 가득염으로 바꾸면서 지명타자 박재홍 자리에 투수 조웅천을 배치했다. 이때 조웅천에겐 7번 좌익수 포지션이 주어졌다.

 SK는 8회에 지명타자를 포기했으므로 이후 투수도 타석에 서야 했다. 이에 따라 9회 등판한 정대현은 연장 10회 타석에 들어서 삼진을 먹었다.

 두산 투수 금민철은 올해 타석에서 '한 건' 올린 케이스. 지난달 15일 SK전서 지명타자였던 홍성흔이 연장 10회 포수 마스크를 쓰면서 지명타자를 포기,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리고 금민철은 연장 11회 직전까지 3이닝을 던진 정재훈의 타석 때 대타로 나와 볼넷을 골라 출루한 뒤 홈을 밟아 동점을 만들었다.

 KIA 지명타자 이재주는 포수로 외도했다. 지난달 20일 광주 두산전서 지명타자로 출전했다가 9회 포수로 포지션을 바꾼 것. 김상훈이 포수 선발로 출전했다가 차일목으로 교체되고, 차일목이 8회 득점찬스에서 대타 김주형으로 바뀌면서 포수가 없게 되자 지명타자였던 포수 경험이 있던 이재주가 4년만에 포수 마스크를 썼다.

 한화 송진우는 지난 2001년 6월 3일 청주 LG전서 9회말 대타로 나와 끝내기 안타를 터트리기도 했다. LG 김재박 감독이 MBC 청룡시절이던 85년 7월 27일 잠실 삼성전에 유격수로 선발 출전했다가 연장 10회초 구원투수로 마운드에 오른데 이어, 10회말 끝내기 중전안타를 터트려 승리투수와 승리타점을 동시에 기록한 것도 야구인들의 기억에 남는 사건. 또 이종범은 해태시절인 지난 96년 5월 광주 삼성전에 유격수로 출전했다가 9회 포수요원이 없게되자 마스크를 쓰기도 했다. <송진현 기자 jhso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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