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과 김경준의 질긴 인연 5막


[한겨레] 엇갈린 만남, 헤어짐, 그리고 극적인 해후…두 사람의 진술을 통해 재구성해본 ‘BBK 사건’ 풀 스토리

김경준? 그는 11월16일 저녁 6시55분 인천국제공항의 비행기 탑승 통로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 2001년 12월 미국으로 몰래 건너간 지 6년 만이다. 대통령 선거는 33일 남았다. 떠날 땐 아무도 모르게 떠났지만, 돌아올 땐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그를 지켜봤다. 그는 수건으로 가려진 수갑을 차고 있었다.



단 1분 동안 받은 카메라 세례는 그가 여태 받은 불빛보다 강했다.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그의 입에선 영어도 한국말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는 차분해 보였다.

이명박? 그는 같은 시각 TV를 보고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 시점에서 대통령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김경준의 송환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 후보는 이날 “뭐 그리 대단한 귀국이라고…. 범인 송환하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또 “어느 누구도 우리를 흔들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명박과 김경준 두 사람이 ‘BBK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BBK 사건’을 둘러싼 둘의 얘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180도 다르다. 한 사람의 말이 맞다면 다른 한 사람의 말은 거짓이다. 누가 살아남을까? 저녁 7시50분쯤 김경준은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치킨게임의 심판은 검찰이다.

<한겨레21>은 두 차례의 김경준씨 인터뷰와 그동안의 이명박 후보의 주장, 미국 법원 기록 등을 바탕으로 이명박과 김경준의 관계를 재구성해봤다. 편집자

▣ 특별취재팀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1막.만남

1941년생 한국 국적의 이명박과 1966년생 미국 국적의 동포 1.5세 김경준은 언제, 어떻게, 왜 만났을까? 하나일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의 ‘만남의 역사’가 이젠 두 개의 스토리가 됐다. 상대의 역사는 부정된다. 이명박이 2000년 이후 김경준을 만난 것처럼 얘기하는 건 BBK가 투자자문업을 등록한 이후에 만났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김경준은 만남에서부터 이명박이 종합금융사의 청사진을 그렸고, 자신은 머리와 몸만 빌려줬을 뿐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했다.

김경준이 말하는 역사부터 들어보자.

“1997년 한국에 들어와 살로먼스미스바니환은증권에서 근무했다. 99년 초 신문·방송·잡지 등의 인터뷰 요청이 꽤 있었다. 99년 중순쯤 김백준(이명박의 최측근)이 이미 나의 백그라운드(배경)를 조사하고 찾아왔다. 이명박이 금융 쪽에 관심이 많았고, 그걸로 ‘컴백’(복귀)하려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뜨는 별’이었지만, 이명박은 가라앉아 있었다. 이명박이 갑부라고 생각했고, 큰일을 도모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BBK도 처음부터 이명박이 계획했다. 내 돈을 투자할 이유는 없었다. 이명박은 여기저기 보는 눈들이 많아 BBK의 대표이사를 맡을 수 없었다. LKe뱅크를 지주회사로 만드는 구상 등 이명박은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지시했다. 부모님이나 누나가 이명박을 소개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

이명박의 역사는 다르다.

“2000년 2월 이전 언젠가 김경준을 만났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경준의 부모와 누나인 에리카 김의 소개로 알게 됐다. 김경준의 부모가 애절하게 도와달라고 했다. 김경준이 자신의 금융 경력과 통합된 금융 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소개하면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국에 새로운 콘셉트(개념)를 지닌 사이버 종합금융 그룹사를 만드는 데 나도 동의했다. 김경준의 가족에 대한 믿음과 사업 모델을 긍정적으로 평가해서 그의 책임 아래 운영한다는 조건으로 LKe뱅크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나는 김경준이 일상적으로 회사들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이름을 빌려주고 재정적 지원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정치 방학이 2~3년 갈 것으로 보고 그 기간에 해야 할 일이 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새로운 금융기법을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치를 하더라도 필요하다고 여겼다. ”

2막.인터넷 금융제국을 꿈꾸다

이명박과 김경준 두 사람의 꿈은 하나였다. 인터넷을 통한 금융제국 건설이었다. 그 중심에 ‘리드 컴퍼니’(lead company)인 LKe뱅크가 있었다. 1999년 11월 투자자문업으로 등록한 BBK는 김경준이 대표이사를 맡았다. LKe뱅크는 이명박의 지분을 100%로 해서 2000년 2월18일 출발했고, 6월까지 김경준(30억원)과 하나은행(5억원)의 증자 참여가 끝났다. BBK는 600억원이 넘는 투자를 끌어왔다. LKe뱅크는 e뱅크증권중개 설립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10월에 증권업 영위 신청에 대한 금감원의 예비허가도 나왔다. 100억원의 자본금으로 하되, 대표이사 사장은 김백준으로 예정했다. 모든 게 잘 풀려나가는 듯했다. 현대건설 신화로 불린 이명박이 또 하나의 신화를 만들 것처럼 보였다. 세 회사는 한 사무실에서 공존했다.

김경준의 주장은 이렇다.

“BBK는 이명박 회사다. 나는 돈을 투자하지 않았다. 내 투자금은 0원이다. 다스의 돈 190억원은 BBK, LKe, e뱅크증권중개의 자본금으로 흘러 들어갔다. (e캐피탈로부터) BBK를 인수할 때 들어간 30억원도 이명박 돈이다. 나는 명의만 대표이사였지, 실제론 이명박과 김백준이 운용했다. 나와 AM파파스와 이명박 3자가 맺은 비밀계약서가 있다. 다스와 심텍, 삼성생명 등 다 이명박이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이 BBK에 투자했다. 하나은행이 LKe뱅크에 투자하기 전 이명박이 나한테 하나은행에서 돈이 올 거라고 말했다.

나는 7~8명의 직원들을 데리고 인터넷상 거래 틀을 만드는 기술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금융상품을 만들기도 했다. 회사 운용과 자금 관리는 이명박과 종금사 대표이사 출신인 김백준이 다 했다. 이명박은 자금 관리에 꼼꼼했다

이명박은 김경준한테 배신당했다고 말한다.

“BBK는 김경준이 완전히 지배했던 회사다. BBK를 설립할 때 난 국내에 있지도 않았다. BBK는 내가 투자하기 전부터 김경준이 운영하던 회사다. BBK가 금감원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검찰 조사에서도 나는 BBK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심텍이 나를 믿고 투자했다고 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LKe뱅크도 김경준이 일상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했다. 당시엔 그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김경준의 제안으로 LKe뱅크의 주식과 자금을 MAF나 AM파파스에 거래했으나, 당시엔 이들 회사의 실체를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김경준 소유의 ‘유령회사’(페이퍼 컴퍼니)였다. 김경준은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100억원 이상을 빼돌렸다. 하나은행이 2001년 5억원을 돌려달라고 나와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낸 뒤에야, 김경준이 사기를 친 것을 알았다. ”

3막.베일에 가려진 갈등과 이별

2001년 4월27일에 있었던 일은 둘을 갈라놓는다. 금감원은 BBK투자자문의 운용보고서가 위조됐을지 모른다는 제보에 따라 2001년 3월2일부터 11일 동안 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 조사관들은 서울 강남 대치동 코스모타워 8층에 있는 BBK를 샅샅이 조사했다. 김경준이 BBK의 회삿돈 30억원을 LKe뱅크의 증자 대금에 쓴 게 탄로났다. 이윽고 4월27일 BBK투자자문의 등록이 취소된다. 두 사람의 꿈은 이제 불가능하다는 게 확인됐다. 인터넷 금융제국의 ‘돈줄’ 구실을 할 BBK가 문을 닫은 것이다. 앞서 4월18일 LKe뱅크의 대표이사는 래리 롱이란 인물로 교체된다. 이명박은 이즈음 2002년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나은행은 이명박과 김경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다. 김경준은 그해 12월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빚 청산을 하듯 옵셔널벤처스에서 횡령한 384억원 중 220억원은 BBK 투자자들의 계좌에 꽂아준다. 갈등과 이별로 점철된 이 시기는 두 사람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때이지만 베일에 싸여 있다.

두 사람은 왜 헤어졌을까? 김경준의 말은 이렇다.

“금감원에서 조사하면서 회사가 휘청하기 시작했다. 이명박이 정치한다고 떠들고 다니면서 망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나한테 회복시키라고 했다. 그렇게 못한다고 하니까, 나한테 덤터기를 씌웠다. 처음에 정치를 안 하는 조건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명박은 어떻게 말할까?

“금감원에서 조사해 지적받을 정도면 같이 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헤어졌다. 그런데 금전 관계를 청산할 줄 알았는데 돈을 돌려주지 않는 거다. 나중에 보니까 미국에 가서 구속이 되어 있더라. 어쨌든 김경준이 그만큼이라도 돈을 돌려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다스의 돈만 떼먹고 갔는지 모르겠다. 다스한테도 돈을 갚아야지….”

4막.미국에서의 소송전쟁

이제 두 사람은 적이 됐다. 2002년 4월15일 금감원은 옵셔널벤처스 주식의 시세를 조정한 혐의로 김경준을 검찰에 통보한다. 이명박의 친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는 2003년 5월 미국 법원에 김경준을 상대로 150억원을 돌려달라며 손해배상 소송을 낸다. 미국에 있는 김경준을 상대로 낸 첫 소송이다. 곧바로 이명박도 김백준을 대리인으로 해서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 한국 검찰은 이듬해 2월 미국에 범죄인(김경준) 인도 요청을 한다. 석 달 뒤 김경준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에 긴급체포된다. 옵셔널벤처스의 후신인 옵셔널캐피탈도 횡령한 돈을 돌려달라며 역시 김경준을 상대로 소송을 낸다. 이명박과 김경준은 미국에서 소송전쟁에 돌입했다.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미국에서 소송전은 김경준의 완승이었다. 미 연방정부가 김경준을 상대로 낸 재산가압류 소송에서 김경준이 이겼다. 다스도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연방정부 편에 서 소송에 참여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졌다. 다스가 원고가 돼 벌인 소송에서도 김경준이 승리했다. 김경준이 한국 정부의 범죄인 인도 청구가 부당하다면서 낸 재판에서, 이명박 쪽이 김경준의 송환을 연기해달라고 한 요청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06년부터 김경준은 “BBK는 이명박의 것”이라고 법정에서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8월 두 차례에 걸친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김경준은 9월20일 이명박이 자신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맞소송을 냈다. 소장에서 그는 “이명박이 사기와 탈세, 자금세탁 등의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등 이 후보 진영에서 자신에게 씌운 굴레를 그대로 되돌려줬다.

이명박은 김경준이 자신과 김백준 몰래 돈세탁, 횡령 등 온갖 수법으로 ‘BBK 사건’과 관련된 모든 범죄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또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 등은 모두 김경준이 위·변조했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쪽은 김경준이 ‘제2의 김대업’이라고 주홍글씨를 새겼다.

5막.송환 그리고…

‘거자필반’(去者必返)이라고 했던가? 6년 만에 김경준은 한국 땅을 밟았다. 김경준은 2004년부터 한국 정부의 송환에 응할 수 없다며 끌어온 소송을 지난 10월 접었다. 어차피 이길 승산은 없었다. 하지만 송환 시점은 더 늦출 수도 있었다. 그는 왜 대선 직전을 택한 것일까? 그와 그의 가족들은 이명박 후보 쪽이 더 이상 자신들을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이명박은 “김경준이 돌아오면 김대업이 된다”며, 일말의 양심이 있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면서도 “정치권이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얘기했다. 이명박은 김경준이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자신은 그것으로 끝이고, 손해 본 것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제 막바지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미국 법률대리인들은 김경준의 송환을 막으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 김경준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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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BBK 뇌관’ 이면계약서 감정 온힘


[한겨레] 김경준(41) 전 비비케이(BBK) 대표가 검찰에 제출한 이면계약서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주가조작 공모 여부를 가릴 핵심 물증으로 떠오르면서 이 부분에 대한 검찰 수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은 20일 김씨가 제출한 이면계약서를 포함한 관련 자료를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에 보내 감정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쪽은 이 이면계약서에 ‘엘케이이뱅크가 비비케이, 이뱅크증권중개의 홀딩컴퍼니(지주회사)이고, 이명박 후보가 세 회사의 지분을 100%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은 지난 18일 이 후보의 최측근 김백준(67)씨에게 이 이면계약서를 제시하며 이런 내용을 추궁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 계약서 자체가 위조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면계약서의 위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대검 문서감정실에 감정을 의뢰한 것이다. 검찰은 문서 감정의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민간 감정기관 한두 곳에 추가로 감정을 의뢰할 방침이다.

대검 관계자는 “친필 서명이 들어간 원본은 서명의 진위부터 따진다. 필기구를 종이 위에 누르는 힘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필압’과 문자 상호간의 크기, 각도 등을 따져 서명의 진위를 가릴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후보 쪽이 ‘이면계약 내용이 담긴 쪽만 바꿔치기된 것’이라고 주장하거나 김씨가 제출한 계약서가 복사복일 경우, 문서 전체에 대한 진위 감정이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대검 관계자는 “출력이나 인쇄 형태의 차이가 있다면 계약서의 일부가 위·변조 됐다고 확인할 수 있지만, 인쇄의 차이가 없거나 더구나 사본을 감정해야 할 경우에는 감정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은 19일 <미주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검찰에 제출한 계약서는 사본이고, 원본은 내가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소 관계자도 “10년 안팎의 문서는 종이 재질 분석으로 동일한 시기에 출력되거나 만들어졌는지는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씨가 검찰에 넘긴 이면계약서에는 ‘2001년 2월21일’에 이 후보와 김경준씨가 서명한 것으로 돼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이면계약서의 진위 감정과 별도로 이면 계약서 작성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목격자 등 당시 정황에 대한 수사를 위해 당시 김경준씨가 배석했다고 지목한 김아무개(49) 변호사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검찰은 엘케이이뱅크의 감사를 지내기도 한 김 변호사를 조사할 경우, 이면계약서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또 김 변호사 외에도 이면계약서의 실체를 알 만한 비비케이의 주요 간부들을 잇달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비케이의 주요 임원이었던 허아무개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면계약서는 나도 보지 못했고 알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고제규 김지은 기자 unj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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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친필서명 진위 어떻게 가리나>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 김경준(41)씨가 제출한 `이면계약서'의 진위 여부가 검찰 수사의 성패를 가름짓는 최대 변수로 떠오른 가운데 이면계약서의 친필서명을 확인하는 기법에 얼마나 신뢰를 둘수 있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만일 이 후보의 친필서명이 `진짜'로 판명되면 `BBK의 실소유주가 이 후보'라는 김씨의 주장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에 친필서명 감정에 대한 신빙성 확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경준(41) 씨의 부인 이보라 씨가 20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공개한 이면계약서 사본을 보면 이 후보의 영문 이름을 필기체로 흘려쓴 친필서명이 김씨 등의 서명과 함께 차례로 기재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김씨로부터 제출받은 이면계약서 사본을 대검 문서감정실에 의뢰해 그 진위를 가리는 작업에 착수했는데 문서의 내용은 물론 친필서명에 위ㆍ변조가 없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서명의 진위 여부를 감정할 때는 필체 뿐 아니라 글씨를 쓸 때 종이를 누르는 힘인 필압, 글씨를 쓰는 순서, 글자의 구성 등을 두루 살피게 된다.

필체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감정해야 하는 서명과 비슷한 시기의 서명을 확보해 대조하는 것이 중요하며, 필압의 경우 입체현미경과 같은 특수장비로 서명 당사자가 어느 부분에 힘을 주고 썼는지 확인할 수 있다.

본인이 하지 않은 서명의 경우는 필체와 필압에 차이가 나는 것은 물론 떨림으로 인한 `글자꺾임' 현상도 나타날 수 있어서 위ㆍ변조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같은 사람이 한 서명이라도 때마다 조금씩 다른 것은 당연하지만 한글 자음인 `ㅁ'을 예로 들었을 때 2획으로 쓰는지 3획으로 쓰는지는 사람마다 달라서 서명 당사자의 잠재적인 서명 습관을 추려내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는 것이 감정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검찰은 일단 김씨가 제출한 이면계약서 사본으로 문서감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미국에 있는 김씨 가족과 이 후보측에 원본 제출을 요구했으며 필요할 경우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도 함께 의뢰해 감정 결과의 공신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소위 `이면계약서' 사본을 제출해서 그 내용의 진위 등을 확인하고 있는데 사본 상태라 성립의 진정 여부를 확인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원본을 제출받는대로 감정을 의뢰할 예정임을 시사했다.

nar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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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 '3대 의혹' 증거 내놓을 땐 대선판 요동



BBK 김경준씨 이르면 15일 입국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 인물인 전 BBK 대표 김경준(41)씨의 귀국이 초읽기에 들어감에 따라 정치권의 관심이 온통 검찰로 쏠리고 있다.

김씨가 “BBK사건의 몸통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나 진술을 내놓을 경우 이 후보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사활을 걸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검찰은 과연 진실게임 양상마저 보이며 난마처럼 얽힌 의혹을 신속하게 풀어낼까.

■ 의혹1: 이 후보 BBK 실소유 여부

BBK 의혹은 이 후보 친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운영하는 현대차 협력사 ㈜다스의 실제 소유주가 이 후보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경선 과정 때부터 ㈜다스를 차명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아 왔고, 최근에는 ㈜다스가 BBK에 투자한 돈이 이 후보가 설립한 온라인 금융회사 LKe뱅크에 투자됐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상태다.

㈜다스 자금이 LKe로 흘러 갔다면 이 후보가 ㈜다스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여권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 후보가 ㈜다스 주식을 차명 보유했으면서도 백지신탁 규정을 이행하지 않아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했다고 공세를 펼 태세다. 김씨는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후보가 직접 서명한 BBK 투자와 관련한 이면계약서와 ㈜다스의 BBK 투자 경위를 설명하는 서류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김씨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며 비밀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전략기획팀장 고승덕 변호사는 “이 후보는 BBK 주식을 1주도 가진 적이 없고, 발기인이나 이사, 주주가 된 적도 없다”며 “이 후보가 BBK에 관련됐다는 일각의 주장은 조작된 서류에 근거해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의혹2: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 BBK에 투자됐는지 여부

㈜다스가 BBK에 투자한 돈 190억원도 이 후보의 돈이라는 주장도 BBK의 실소유주가 이 후보라는 의혹의 연장선에 위치해 있다. 서울 도곡동 땅 매각대금이 ㈜다스로 흘러 들어갔고 ㈜다스에서 이 돈을 BBK에 투자했다면 도곡동 땅이 사실상 이 후보의 차명 부동산이었다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라면 BBK 주가조작에 이용된 돈은 그 뿌리가 도곡동 땅 매각대금으로까지 거슬러 올라 가게 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8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도곡동 땅 중 이상은씨 몫은 제3자의 소유로 보인다”는, 다소 애매한 수사결과를 발표해 정치권의 논란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도곡동 땅 매각대금 대부분이 당시 보험상품에 가입돼 BBK 투자가 불가능한 상태였다고 주장한다. 고승덕 변호사는 “190억원 투자금은 ㈜다스가 납품대금으로 받은 어음 할인금, 정기예금 해지 등으로 조성한 자금이며, 도곡동 땅 매각대금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도곡동 땅 매각대금 중 이상은씨 몫은 200년 12월 조흥은행 계좌로 들어갔다가 이듬해 2월 같은 은행 펀드계좌로 옮겨갔다고 반박했다.

■ 의혹3: 이 후보가 주가 조작에 연루됐는지 여부

이 후보와 관련한 의혹의 종착점은 주가조작 연루 여부다. BBK는 김씨가 1999년 4월 설립한 투자자문회사다. 김씨는 2001년 초 금감원이 BBK의 위법 투자 혐의를 문제 삼아 등록을 취소하자 투자회사인 ‘옵셔널벤처스’를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주가조작은 이 때부터 시작된다.

검찰은 김씨가 외국인 투자설 등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려 주가조작을 시도했고 회사 돈 384억원을 횡령해 5,200여명의 소액 투자자에게 피해를 입힌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피했고 6년 만에 귀국을 앞두고 있다.

여권 등에서는 이 후보가 2000년 김씨와 공동투자 형태로 LKe뱅크를 설립한 점으로 미뤄 이 후보가 주가조작에 관여했거나 최소한 미리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김씨가 단독으로 주가를 조작하고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미국 법원에서 인정됐다”며 이 후보 연루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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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李 인사스타일 비교-1,2

2007/04/29 13:01
朴-李 인사스타일 비교-1,2
[연합뉴스 2007-04-29 08:15]
 
朴 `의리형' 李 '실사구시형'



(서울=연합뉴스) 이승관 김경희 기자 = 한나라당 양대 대선주자인 박근혜(朴槿惠) 전 대표와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의 인사스타일은 어떻게 다를까.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론지지율 1, 2위를 달리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두 사람은 '대통령의 딸'과 '대기업 CEO(최고경영자)'라는 서로 다른 인생역정을 반영하듯 인사 철학에서도 적지않은 차이를 보인다.

퍼스트 레이디, 당 대표 등을 거치면서 질곡의 정치행보를 걸어온 박 전 대표는 '의리형', 노점상에서 시작해 대기업과 공직의 수장으로서 수많은 부하를 호령했던 이 전 시장은 '실리형' 인사스타일을 보인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朴 = "한 번 내 사람은 영원한 내 사람"이라는 한마디로 대변된다. 곁에서 그를 오래 지켜본 사람일수록 입을 모아 "박 전 대표는 사람을 함부로 신뢰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한번 호불호가 정해지면 잘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본인이 믿을 수 있는 한정된 인재풀에서 사람을 골라쓰고, 자리를 맡기면 웬만한 구설에 오르더라도 본인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 때론 친소관계에 이끌려 균형감각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최근 이 전 시장의 해외출장에 수행한 기자에 대해 "박 전 대표와의 만찬에서 `도를 지나치는 추임새'를 보였다가 두바이 천지개벽과 인도 IT 산업 시찰 출장을 다녀왔다"며 마치 이중적 태도를 보인 것처럼 비난하고, 박 전 대표에게 '불리한' 기사를 쓰고 자신과 말다툼을 했던 한 기자를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 목을 조르려 했다는 내용의 글을 써서 물의를 빚은 캠프 대변인 한선교 의원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대처가 이러한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 의원의 이 글에 대해 `기자 편가르기'의 전형적 사례라며 출입 기자들이 항의하고 해당기자는 물론, 캠프 내부에서도 강력하게 한 대변인의 경질을 요구했지만 박 전 대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나에게 맡겨달라"며 해당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하는 것으로 문제를 덮으려 했을 뿐이다.

캠프 관계자는 "일설처럼 한 대변인이 박 전 대표 동생인 지만씨와 친하다거나 친소관계 때문에 경질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면서 "일을 하다 보면 여러 문제가 일어날 수 있고 그 때마다 인사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지난 2월 이 전 시장과의 검증공방이 극단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정인봉 전 캠프 법률특보가 독단적으로 이 전 시장의 위증교사 문제를 폭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미국을 방문중이던 박 전 대표에게 캠프 안병훈 본부장을 비롯해 허태열 의원 등 측근들이 전화를 걸어 정 특보의 경질을 종용했지만 끝내 "그럴 사안이 아니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정 전 특보는 본인 스스로 사직했다.

대표재임 시절 2년 가까이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전여옥 당시 대변인이 `대졸 대통령 발언' 파문 등으로 당 안팎의 거센 비난을 받을 때마다 몇번씩 사퇴를 만류하며 지켜준 것은 유명한 일화다. 비슷한 시기에 곽성문 당시 홍보본부장이 `맥주병 투척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을 때도 사퇴를 만류했었다.

한 측근은 "박 전 대표가 어려서부터 청와대에서 아버지인 고 박정희 대통령의 인사 방식을 배웠고 이후 뼈저린 배신의 경험을 한 것이 인사스타일에 영향을 준 것 같다"며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에 대해서는 고집에 가까운 믿음을 준다"고 말했다.

물론 비판도 제기된다. 한 캠프 관계자는 "잘못이 있어도 무조건 감싸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뒷말이 무성할 수 밖에 없다"며 "편애로 밖에 비치지 않는 몇몇 사례는 이해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고 꼬집었다.

◇ 李 = 철저한 '실사구시(實事求是)형'이라는 게 주위의 대체적인 평가다. 드러난 결과와 실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적인 기업 CEO(최고경영자)의 잣대인 셈이다.

그의 저서인 '청계천은 미래로 흐른다'에 실려있는 서울시장 취임 초기의 한 일화는 이런 그의 인사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그는 지난 2002년 7월 2일 시장 취임식을 마친 뒤 당시 서울시의 고위 관계자로부터 선거운동 기간에 자신을 반대했던 공무원들의 명단을 적은 이른바 '살생부'를 건네 받았으나 이를 끝내 펴보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나에게 동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내친다면 결국은 내가 손해일 것이다"면서 "내 기준은 일하는 사람"이라고 잘라말했다. '출신성분'이 어떻든 실적을 낼 만한 사람이면 누구라도 중용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 전 시장은 그러나 핵심 측근을 선발할 때는 사람을 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춘식, 정태근 전 서울시 부시장, 정두언 의원, 박영준 전 서울시 국장, 조해진 공보특보 등 현재 자신의 캠프내에 있는 측근 대다수가 시장 재임시절 같이 일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물론 이들은 이 전 시장의 '업무능력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반면 최측근 이외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으로, 실무자들에게 '수고한다'는 격려조차 잘하지 않는 편이어서 섭섭함을 느끼기도 한다는 것이 한 캠프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는 박 전 대표 진영에 비해 캠프 인사들의 '충성도'가 떨어지는 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 전 시장은 오랜 기업생활을 통해 갖춘 특유의 추진력과 끈기를 인사에도 발휘한다. 한번 영입을 결심하면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고 결국은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경선 선거대책본부의 위원장으로 사실상 확정된 박희태 의원과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주호영 의원의 경우가 바로 이런 예로, 이 전 시장은 직접 이들과 수차례 만남을 가진 것은 물론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 등을 통해서도 집요한 설득작업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렇듯 치밀한 계산하에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다른 한편으론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월 캠프 대변인에 이재오 최고위원이 천거한 이성권 의원을 사실상 내정했다가 주위에서 `너무 젊은 이 의원이 대 언론관계를 잘 할지 모르겠다'는 만류가 있자 고심만 하면서 몇개월째 미뤄두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주위에서 사람을 천거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조직원이 결정적인 실수를 해도 쉽게 내치지 못해 오히려 다른 조직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6월말 서울시장직을 퇴임한 뒤 차린 캠프의 식구 수는 몇배나 늘어났지만 이 전 시장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은 사람은 단한명도 없다.

캠프 관계자는 "측근을 많이 두지 않는다는 점도 사람보다는 일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나쁘게 말하면 업무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지만 인사에 있어서는 과단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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