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야구] 선동열 대 최동원, 15이닝 완투의 추억

[JES 하남직] 1987년 5월 16일. 토요일을 맞아 부산 사직구장은 관중으로 가득찼다. '구도' 부산팬들의 야구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열정적. 하지만 이날 관중석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뜨거웠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해태)과 철완 최동원(롯데)이 펼치는 세기의 선발 맞대결을 눈앞에서 지켜본다는 흥분이 사직구장을 뒤덮었다. 앞서 두차례 선발 맞대결 성적은 1승 1패.

이번이 마지막 대결임을 직감했을까. 이날 선동열과 최동원은 한국 야구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을 연출해냈다.

후배 선동열이 기선제압을 당했다. 롯데는 2회말 안타 2개와 볼넷 한개 등을 묶어 2점을 선취했다. 하지만 해태는 3회초 2사 2루에서 서정환의 중전 적시타로 1점을 따라붙었다.

경기 초반 다소 흔들렸던 선동열과 최동원은 이후 명성에 걸맞는 팽팽한 투수전을 펼쳤다. 선동열은 3회부터 8회까지 6이닝 연속 삼자범퇴를 기록하는 등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했다.

최동원도 최강의 해태타선을 꽁꽁틀어막으며 2-1 리드를 지켜나갔다. 한 이닝만 무실점으로 막으면 최동원의 완투승으로 세번째 대결이 마무리 되는 상황.

하늘은 세기의 맞대결에 반전을 숨겨뒀다. 최동원은 9회 선두타자 한대화에게 중전안타를 내주며 위기를 맞더니 1사 2루 상황, 대타로 등장한 김일환에게 우월 2루타를 맞으며 2-2 동점을 허용했다. 결국 승부는 연장전으로 넘어갔다.

선동열과 최동원 모두 투구수 100개를 넘긴 상황이었지만 둘은 계속해서 마운드를 지켰다. 포수 자원이 모두 고갈돼 내야수 백인호가 마스크를 쓰는 악재를 딛고선동열은 남은 6이닝을 무실점으로 소화했다.

주전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수비 불안을 안고 마운드에 오른 최동원도 마찬가지. 결국 이날 4시간 56분의 혈투는 '양팀 선발 15이닝 2실점 완투'라는 이색 기록을 남긴 채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이날 무승부 뒤 둘은 단 한번도 맞대결을 벌이지 못했다. 선동열은 이날 경신이 불가능해 보이는 한경기 최다투구수(232개)를 기록했다. 최동원의 투구수(209개)와 합한 양팀 선발 441개 투구수. 아직도 깨지지 않는 양팀 선발 투구수이다.

경기 뒤 선동열은 " 최동원 선배라는 거대한 목표가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고 선배에 존경심을 표했다. 최동원도 "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를 이끌어갈 최고의 투수다 " 라며 후배를 치켜세웠다. 평생 한번 보기 힘든 명승부, 그 뒤에 이어진 아름다운 칭찬 릴레이. 관중들은 야구팬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가슴에 담은 채 경기장을 나섰다.

차동철과 김신부, 둘이 합해 30이닝 무실점

선동열과 최동원이라는 거목에 가려 빛을 잃었지만 정작 양팀 선발 한경기 최다이닝 무실점 기록은 차동철과 김신부가 보유하고 있다.

1986년 7월 27일 인천구장에서 펼쳐진 해태와 청보의 경기. 양팀 선발로 나온 차동철(해태)과 김신부(청보)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운드를 지켰다.

15회말 2사 청보의 김바위가 2루땅볼로 물러날때까지 전광판 양팀 스코어를 가리키는 자리는 0이란 숫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0-0 무승부. 차동철은 51타자를 상대로 15이닝 10피안타 6탈삼진을 기록했고, 김신부는 47타자를 맞아 8피안타 10탈삼진으로 맞섰다.

두명의 투수가 각각 15이닝 완봉투를 펼치고도 승리의 주인공을 가리지 못한 이런 상황은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선발-중간-마무리로 이어지는 마운드 분업화가 확고해지고 있는데다 2003년부터 '정규시즌에는 연장전을 12이닝까지 치른다'는 규정이 바뀔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하남직 기자 [jiks@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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