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환경 위해 써야할 미환불금, 기업 홍보비·운영비로 전용한 사례 속속 드러나 현재 보증금 받는 업체 20곳… 사용 내역 확인 어려워 근본적 대책 마련 시급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손님이 ‘1회용 컵’을 사용할 때마다 지불하는 보증금 제도가 취지와 달리 변질돼 일부 업체들의 주머니 돈으로 전락하는 경우까지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국내 대형 패스트푸드점(80평 이상)과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50평 이상)들은 2002년 환경부 권고에 따라 1회용 컵을 사용하는 손님에게 50~100원의 컵 보증금을 받은 뒤 컵을 반환하면 보증금을 돌려주는 ‘1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환경에 부담을 주는 1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한편 손님이 컵을 반환하지 않아 생긴 보증금은 환경보전의 공익용도로 사용하자는 것이 이 제도의 본래 취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업체들이 이를 외면하거나 교묘히 악용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상당수 업체들이 1회용 컵 보증금 수익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실상의 홍보자금으로 전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심지어 어떤 업체는 매장 내 일반 컵이나 세척기 구입비용으로까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와의 협약에 따라 현재 컵 보증금을 받고 있는 업체는 롯데리아, KFC, 파파이스, 버거킹,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점 5곳과 스타벅스, 커피빈코리아, 할리스, 로즈버드 등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 15곳이다(2007년 4월 30일 기준, 표 참조).
이들 업체는 현행법에 따라 환경부령이 정하고 있는 환경 보전 활동을 하는데 ‘컵 보증금’을 써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업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컵 보증금을 순수한 환경보전 목적이 아닌 영업적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최근 환경사랑캠페인을 벌인 ‘던킨도너츠’는 미환불된 컵보증금으로 환경가방을 만들어 도너츠를 12개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만 가방을 나눠주는 행사를 실시했다. 환경 가방이라고는 하지만 이 가방에는 ‘던킨도너츠’라는 로고가 적혀있어 기업의 홍보 효과를 얻기 위한 판촉 행사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또 서울 지역의 한 재활용처리센터를 확인한 결과 던킨도너츠의 1회용 컵들은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된 채 그대로 버려지고 있었다.
같은 계열사인 ‘베스킨라빈스’는 홈페이지에 공지한 컵 보증금 사용 내역 3억 6,000만원과 실제 확인된 내역이 1억원 이상 차이가 났다. 두 업체를 관리하는 ‘BR코리아’는 컵 보증금을 운용하는 별도의 통장에서 발생한 이자까지 함께 사용해 문제가 됐다.
국내에서 매장 점유율이 가장 높은 ‘롯데리아’의 경우 컵 보증금 사용 시 환경부 승인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생략한 채 무료 환경캠프를 추진하고, 높은 출연료의 연예인을 섭외 해 공익CF를 제작했다.
또 행사가 컵 보증금으로 진행된 행사임을 확실히 밝혀야 하지만 이와 관련해 서류상으로 정확한 사실을 명기하지 않아 실상 컵 보증금이 기업홍보마케팅 수단으로 쓰였음이 밝혀졌다.
또 다른 패스트푸드점 ‘맥도날드’는 컵 보증금으로 미화원 자녀들에게 환경장학금을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맥도날드 주최임에도 불구하고 ‘환경부와 함께’ 진행하는 행사의 일환이라고 강조해 “기업홍보활동으로 비춰지는 것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기도 했다.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도 상황은 비슷하다. ‘파스쿠찌’와 ‘커피빈’은 컵 보증금으로 ‘다회용 컵’과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다. 이 역시 자체적으로 기업 운영비에서 지출해야 하는 항목이지만 “환경부의 승인을 얻었다”며 컵 보증금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사실을 가리려 했다.
버젓이 자기네 상표가 적힌 ‘다회용 컵’을 제작하고 ‘식기세척기’를 구입한 사실은 컵 보증금이 기업 홍보비와 운영비로 전용됐음을 말해주는 숨길 수 없는 증거다.
환경단체 관계자는 “1회용 컵 보증금은 기업에 맡겨 놓은 소비자들의 돈”이라며 “소비자들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돈을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자사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에서 2006년 하반기 업체들의 1회용 컵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총 39억2,300만원의 컵 보증금(환불+미환불) 중 42.8%에 해당하는 16억7,900만원이 고객에게 환불되거나 환경보전 사업 등에 사용됐다.
그 내역을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52.9%인 8억8,700만원은 고객에게 환원됐고, 환경보전 행사 및 활동 지원에 4억1500만원(24.7%), 환경장학금 수여에 3억4,100만원(20.3%), 환경보전을 위한 홍보에 2,200만원(1.3%)이 사용됐다. 그리고 나머지 1,400만원(0.8%)의 컵 보증금이 다회용 컵과 세척기 구입자금으로 쓰이는 등 기업운영비로 사용됐다.
환경부와 협약을 맺은 업체들은 소비자가 찾아가지 않은 컵 보증금을 환경보전 사업에 사용해야 하고, 사용내역을 6개월마다 공개해야 한다.
그러나 ‘자발적’ 협약의 특성 상 사용내역 감시가 어렵고, 내역공개마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 결국 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도 컵 보증금 제도가 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한 채 기업들의 쌈지돈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컵 보증금 문제가 언론 등에 의해 제기되자 환경부는 최근 과천 시민회관에서 공청회를 열었다. 민간단체와 현재 자발적 협약을 맺고 있는 업체 19곳이 모여 ‘1회용 컵 사용 실태’와 관련해 제도 마련과 법안 정비를 논의했다.
환경부는 현재 6개월에 한번씩 진행하는 감사를 더욱 철저히 하고,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을 개정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열린우리당 우원식 의원은 이와 관련해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발의를 추진 중이다. 1회용 컵 보증금의 용도를 법에서 정한 공익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정책의 합리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이 개정안에는 ‘1회용품 유상판매 금액의 용도 및 관리를 권고조항에서 강제조항으로 하고, 규제대상 사업자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다’, ‘사업자가 1회용품 판매대금을 사용할 경우 사업소가 위치한 지역의 소비자들을 위한 목적에 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한다’, ‘1회용품 판매금액 중 고객환불이나 사업자가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한 용도에 사용하고 남은 금액에 대해서는 1회용품 판매관리기금을 설치토록 한다’,
‘판매기금 관리와 관련한 기금운영위원회의 설치 및 세부 운영사항에 대해서는 환경부령으로 정하도록 한다’ 등이 포함돼 있다.
‘자발적 참여’에 초점을 맞췄던 기존 법안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쪽’으로 선회하면서 ‘철저한 관리’와 컵 보증금의 ‘정확한 사용’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측은 컵 보증금 문제와 관련해 “컵 보증금을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컵을 사용할 경우 50~100원을 할인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컵 회수 활동’에 더 많은 컵 보증금을 투자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컵 보증금 기계가 매장 내에만 설치돼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환불 받는데 번거로움이 많은 점을 감안해 컵 보증금 기계를 매장 외 곳곳에 설치하는 비용 역시 컵 보증금으로 써야 한다는 게 자원순환사회연대의 지적이다.
자원순환연대 측은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들은 주로 체인점 형태로 운영되기 때문에 ‘컵 보증금’을 다시 본사로 보내야 한다”며 “매장 자체적으로 결정권을 갖고 해당 지역 소비자들이나 그 지역 환경 보호를 위해 ‘컵 보증금’이 사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경실천연합회 양진우 연구실장은 “그 동안 1회용품 사용 줄이기를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던 컵 보증금 제도가 오히려 국민들에게 환경처리비용을 지불한다는 그릇된 면죄 의식을 심어주어 일회용 컵 사용을 늘리고, 기업들에게는 검은 돈만 더해줬다”고 비판했다.
“1회용 컵 보증금 환불을 단지 50원, 100원의 가치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자원 재활용을 통한 우리 국토를 푸르게 가꾼다는 의식으로 접근하고 실천해야만 길거리에 버려지는 1회용 컵들이 수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일각에서는 컵 보증금 제도를 아예 폐지하자는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네티즌 사이에서는 일회용 컵 뿐만 아니라 일회용 쇼핑백 등 모든 일회용품 사용에서 발생하는 ‘환경 보증금 없애기’ 서명운동이 발의되기도 했다.
윤선희 기자 leonelg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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