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니"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7/29 정체 불명의 알약, 그리니 (1)

정체 불명의 알약, 그리니

2007/07/29 14:18
정체 불명의 알약, 그리니
스포츠2.0 | 기사입력 2007-07-24 19:36 | 최종수정 2007-07-24 21:56    기사원문보기
외국인선수로는 거의 최초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호세. 이제는 약물의 대명사가 될 처지에 몰렸다.(사진 이휘영)

5월 11일 롯데에서 뛰던 펠릭스 호세가 퇴출됐을 때 한 롯데팬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이렇게 가차없이 내칠 수 있느냐”며 분노했다. 많은 롯데팬이 비슷한 심정이었다.

그 뒤 호세가 멕시칸리그 푸에블라팀에서 외야수로 뛰며 재기를 노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러나 7월 4일 갑작스런 소식이 전해졌다. 호세가 멕시칸리그에서 금지약물 복용으로 50경기 출전정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는 외국인선수 점검을 위해 멕시코를 다녀온 LG 관계자에 의해 국내에 전해졌다.

사실 호세의 약물복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9년 롯데에 입단했을 때부터 약물복용을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99년 호세가 입단했을 때부터 함께 뛰었던 롯데의 한 선수는 “(호세가) 끊임없이 무슨 약을 주기적으로 먹었다”며 “무슨 약이냐고 물으면 영양제라고 대답했는데 자세히 보면 무슨 강화제라고 써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롯데의 한 관계자도 “호세가 정체불명의 약을 복용한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호세가 먹는 약은 비타민제로 알려졌고 구단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한다. “보통 스테로이드제라고 하면 주사로 맞지 않느냐. 그러나 호세는 주사를 무척 무서워했다.” 롯데 윤동배 스카우트 팀장의 기억이다.

정체불명의 약이 약물이었던 것이다. 호세 외에도 약물을 복용했던 외국인선수가 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시온’이라는 이름으로 롯데에서 뛴 마리오 엔카르나시온이다. 이시온 역시 끊임없이 정체불명의 약을 복용했다. 이시온은 대만 성태 코브라스에서 뛰던 2005년 10월 숙소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사인은 약물복용에 따른 후유증이었다.

삼성과 SK에서 뛰었던 텔슨 브리또도 약물복용이 의심됐던 선수다. 브리또는 경기 시작 전 커피에 알약을 타 마시곤 했다. 브리또는 동료 선수들에게 “이걸 마시면 정신이 확 깬다. 커피 100잔을 마시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알약 이름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그리니”라고 친절하게 대답해주곤 했다. 그렇다면 ‘그리니’는 대체 어떤 약이었을까. 해답은 일본프로야구에서 찾을 수 있다.

정체불명의 약, 그리니

일본야구기구(NPB)는 올시즌부터 도핑검사를 실시한다. 검사기간은 선수와 구단 간의 계약기간인 2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다. 약물복용자는 최소 견책, 최대 무기한 출전정지 처분을 받는다. 구단 관계자가 관여했을 경우는 해당 구단에 1천만 엔(약 8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예정이다. 언뜻 일본스포츠계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지난해 NPB가 100여 명의 선수를 상대로 제재가 없는 비공개 도핑검사를 했을 때 공식적으로 드러난 양성 반응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를 토대로 일본 언론에서는 자국 스포츠계의 투명성을 칭찬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 언론에서는 <시사통신>이 유일하게 비공개 도핑검사를 담당했던 NPB 하세가와 가즈오 사무국장의 발언을 실었다. 요지는 “양성 반응이 ‘제로’는 아니었으나 악질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일본프로야구의 금지약물 복용 논란은 메이저리그에 뒤지지 않는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요미우리 자이언츠 종신감독 나가시마 시게오의 아들 나가시마 가즈시게가 한 방송에 출연해 “현역 시절 스테로이드를 사용해 도핑검사에 몇 번 걸린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요미우리에서 선수로 뛰기도 했던 나가시마의 고백은 그동안 일본프로야구계가 약물의 사각지대였다는 것을 드러내는 충격적인 증언이었다.

2005년 8월 일본의 주간지 <슈칸 아사히>는 “지바 롯데 마린스 선수들이 마시는 ‘수수께끼의 약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지바 롯데 선수들 사이에서 ‘환경보호 운동가’라고 불리는 녹색 알약이 유행했는데 이것이 암페타민 계열의 각성제나 마약의 일종인 엑스타시였다”는 내용의 폭로기사였다.

이 기사에서 지바 롯데의 한 선수는 “피로가 줄고 집중력이 높아지는 효과 때문에 여러 선수들이 이 약을 복용했다”고 고백했다. 이 약의 또 다른 이름이 바로 ‘그리니’였다. 기사가 나간 뒤 지바 롯데 바비 밸런타인 감독과 세토야마 류조 구단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청해 “약물복용설은 절대 사실이 아니다”라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지바 롯데는 <슈칸 아사히>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았으며 그 후 일체의 대응도 하지 않았다.

요미우리도 약물에 취했었다?

올해 2월에는 <슈칸 아사히>의 기사를 한층 뛰어넘는 충격적인 고발이 일본을 뒤흔들었다. <슈칸 포스트>가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 노무라 다카히토의 증언을 빌어 “2000년 요미우리가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요미우리 선수들 사이에서 약물이 만연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노무라는 1991년 드래프트 3위로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팔로스)에 입단한 왼손 중간계투 투수로 1996년 오릭스가 일본시리즈 챔피언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선수다. 이후 요미우리와 메이저리그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활약하다가 지난해 각성제 사용이 발각돼 유죄판결을 받았다.

노무라는 지난해 12월 법정에서 “오릭스에서 활동할 때 같은 팀 외국인선수의 권유로 ‘환경보호 운동가(그리니)’를 복용하기 시작했고 동료선수들에게 나눠줬다”고 증언했다.

노무라는 <슈칸 포스트>에 ‘환경보호 운동가’를 복용한 요미우리 선수들의 이름을 이니셜로 처리하되 누구나 알 만한 특징을 덧붙였다. 대표적인 경우가 ‘M선수’다. 이 선수의 특징으로 노무라는 “주전. 기록이 걸린 경기에 한 번만 복용한다. 평소 냉정하지만 그 경기에서 범타에 그치면 배트를 던진다”고 설명했다. 누구라도 그가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야구, 약물 안전지대 아니다

지난날 마약류를 복용한 프로선수들이 심심찮게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경기력 향상을 위해 약물을 복용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멤버인 SBS스포츠 이광권 해설위원은 “실업에서 많은 경기를 하지 않던 선수들이 프로에서 100여 경기를 뛰다 보니 피로감과 체력소모가 심했다. 극소수 선수들이 이를 핑계로 마약에 손을 대기는 했지만 거의 모든 선수들은 약물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경기력 향상을 목적으로 약물복용이 의심된 대표적인 사례는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두고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됐던 진갑용(삼성)이다. 당시 진갑용은 “친한 한의사가 지어준 한약을 먹은 게 도핑테스트에 걸린 이유가 된 것 같다”고 말했는데 진갑용의 몸에서 나온 테스토스테론은 금지약물 가운데 가장 유명한 근육강화제에서나 나오는 것이었다.

한편 이르면 7월께부터 시작하기로 했던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도핑테스트가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 반발이 큰 걸림돌이다. 선수협 나진균 사무총장은 “KBO의 도핑테스트는 자칫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있고 실질적으로 어떤 법적 근거도 없는 것”이라며 “현대 인수문제 등 산적한 현안에 야구인들이 머리를 맞대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총장의 말은 보험판매원이 사형수에게 암보험을 권유하는 것처럼 뜬금없기만 하다. 2002년 선수협, KBO, 구단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단순 건강식품을 섭취한 것에 대해서도 ‘약물복용’이라고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며 “억울한 면을 풀기 위해서도 (선수협이) KBO에 도핑테스트를 제안했다”고 말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총장 본인이었다. 이제 와서 인권에 눈을 떴다니 놀랍기만 하다. 건전한 스포츠맨십과 공정한 경쟁은 법 이전에 존재하는 상식이며 약물로부터 선수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다.

SPORTS2.0 제 59호(발행일 07월 09일) 기사

박동희 기자

ⓒmedia2.0 Inc. All rights reserved.

무단전재 및 재배포시 법적 제재를 받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