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링크 :
http://sports.media.daum.net/nms/baseba ··· edgeline

[야구 스터디] 인필드 플라이로 득점?

인필드 플라이로도 득점이 나올 수 있다?
정답은 '가능하다'다. 18일 사직 히어로즈전, 롯데의 1회말 공격에서 '검증'이 됐다. 1사 만루에서 롯데 5번타자 이대호 타석. 이대호는 평범한 유격수 플라이를 쳤다.

그러나 강한 바람에 히어로즈 유격수 강정호는 타구 판단을 정확히 못 했고, 결국 공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 순간, 롯데의 모든 주자들이 움직였다. 그러나 강정호는 재빠른 뒤처리로 3루로 쇄도하던 롯데 조성환을 아웃시켰다. 1-0 득점이 인정됐고, 2사 1,2루가 이어지는 줄 알았지만 최종 결과는 스리아웃 공수교대.

이대호의 타구가 높이 치솟았을 때, 최규순 3루심이 인필드 플라이 선언을 했기 때문. 인필드 플라이 선언과 동시에 타구를 잡든 못잡든 타자 이대호는 무조건 아웃이었다. 이어 주자들이 리터치로 뛴 것은 아웃 이후의 동작에 해당한다. 롯데의 3루주자 이승화가 홈을 밟은 것이 2루주자 조성환이 3루에서 아웃된 시점보다 빨랐기에 득점은 인정될 수 있었다. 희생플라이와 유사한 상황이 됐지만 이대호의 타점이 아니라 유격수 실책에 의한 득점으로 기록됐다.

사직|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
야구 본 지 꽤 오래 되었지만, 보면 볼 때마다 새로운 듯하다..;;

어제 경기에서 나왔던 재미있는 장면 중의 하나에 대한 기사인데,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지는 못했기에 확실하게 와닿지는 않았었는데,
이것으로 인필드 플라이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알게 된 듯.

다른 분들도 보통 기사의 다른 부분의 내용은 알고 계시겠지만,
녹색으로 된 부분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앞으로 야구관람하시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송민구] 패스트볼, 라이징 패스트볼의 환상

송민구
야구 칼럼리스트
스포츠 2.0 기고, 국내 유일의 Pitch f/x 전문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그동안 무관심 도루 적용 기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기사를 계기로 적용 기준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관련 부분을 강조해 놓았으니, 시간 없으신 분들은 강조된 부분만 읽어보시면 되겠습니다..^-^;;

================================================================

OSEN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도루왕 가는 길의 복병 ‘무관심 도루’

기사입력 2009-08-19 11:10


지난 2002년, 그 동안 사문화 취급을 받아오던 무관심 도루(정확히 말하자면 무관심 진루) 규정을 실제 적용하기로 전격 결정했을 당시, 기다렸다는 듯 많은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황당한(?) 질문이 하나 있었으니….

도루왕 타이틀이 걸린 선수간의 경쟁에서 상대가 무관심 도루 규정을 역이용해 악용할 경우, 이를 어떻게 분별할 것이며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가 질문의 핵심이었다.

상상화를 그려보면, 도루부문 1, 2위를 다투고 있는 선수가 소속 팀간의 경기에서 특정 팀이 도루경쟁 중인 상대 선수의 도루 행위에 대해 고의로 무관심한 척, 주자를 묶어두지도 않고 다음 루를 향해 뛰었다 하더라도 아예 송구조차 하지 않는 등의 방임성 플레이를 했다는 가정을 놓고 하는 말이었다.

당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이와 같은 질문에 속 시원한 답을 내놓기가 다소 막막한 구석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답이 없지는 않았다.

무관심 도루 적용에 있어 그 기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저를 이루고 있는 한 가지 대전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물 건너간(?) 경기에 적용되는 규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점수차가 크더라도 경기 중반 이전에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 8회나 9회가 된다.

상대가 아무리 고의로 주자견제를 태만히 하고, 뛰어도 모르는 체 고개를 돌렸다 해도 당시 점수차나 이닝 등의 경기상황이 정상적이었다면 무관심 도루의 적용은 없다고 보면 된다.

물론 무관심 도루의 적용여부는 선수들의 플레이 형태에 따라 그 판단이 크게 좌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1루수가 1루주자를 묶어두는 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뒤로 물러나 정상적인 수비위치를 잡고 있었을 경우가 우선 무관심 도루 대상으로 고려된다. 그리고 다음은 포수의 견제동작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이며, 마지막으로 주자가 향하고 있는 다음 루에 수비수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을 때에도 무관심 도루 적용 대상이 된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상황이 한꺼번에 모두 나타났다면 100% 무관심 도루가 적용된다. 그러나 한 가지 또는 두 가지 상황만 일어났다면 약간의 추가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지난 8월 6일 잠실에서 열렸던 LG와 KIA의 경기에서 도루부문 선두를 달리고 있는 LG의 이대형은 팀이 6-11로 뒤지고 있던 9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3루를 훔쳤지만 무관심 도루로 기록된 적이 있다.

당시 이대형이 3루로 향할 때 포수 김상훈(KIA)이 일어나 공을 던지려는 시늉을 하긴 했지만, 투수가 전혀 견제할 생각이 없었다는 점과 3루수 박기남이 이대형을 쫓아 들어가지 않았다는 장면이 반영돼 무관심 도루로 기록된 것이었다.

그러나 전광판에는 이대형이 3루로 들어가자 도루임을 알리는 애니메이션이 작동되었고, 이를 통해 당연히 도루로 기록된 것으로 알았던 LG는 이대형의 도루기록이 인정 받지 못한 것을 알고 부랴부랴 사실확인에 나서야 했고, ‘무관심 도루의 기준은 무엇인가?’하는 문제는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라야 했다.

말 나온 김에 설명을 첨가하자면 앞서 말한 수비수의 플레이상 형태 말고도 몇 가지의 기준이 더 존재한다.

우선 1사나 2사 때 풀카운트(2-3)에서는 밀려가는 주자(포스 상태)의 뜀박질에 대해서는 무관심 도루로 기록하지 않고 있다. 이는 루를 훔치려는 의도로 보기보다 팀 플레이에 의한 자연스러운 주루현상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타자가 헛스윙해 삼진을 당하고 주자는 살았다면 무조건 도루다.

또한 지나친 무관심 도루의 폭증과 남발을 막기 위해 일정 점수차 이내(대개 3점차 정도) 상황에서의 진루 행위에 대해서도 역시 무관심 도루 적용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편 지금까지 무관심 도루가 기록된 전례를 뒤져보면 그 해 도루 1위에 올랐던 선수에게 무관심 도루가 기록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002년 김종국 이후 이종범(2003)-전준호(2004)-박용택(05)-이종욱(2006)과 2007년부터 2년 연속 도루 1위에 올랐던 이대형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공통된 현상이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대도들은 아무 때나 뛰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덧붙인다면 그 동안 도루부문 타이틀을 놓고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2년 이후 1, 2위간 격차가 가장 근접했던 해는 2005년의 박용택(LG, 43도루)과 윤승균(두산, 39도루)으로 ‘4개’ 차이였다.

하지만 올 해는 근년 들어 그 어느 때보다도 도루왕을 가운데 둔 뜨거운 질주경쟁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다. 8월 18일 현재 43개로 도루부문 3연패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 이대형의 뒤를 정근우(SK)가 불과 3개 차로 바짝 뒤쫓고 있다.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LG와 SK가 남겨둔 경기는 양 팀 모두 똑 같은 22경기. 아직까지는 이대형이 유리해 보이지만 도루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출루율에서 정근우(.421)가 이대형(.340)에 비해 무려 1할 가까이 앞서있다는 점은 섣부른 예측을 불허한다.

이제 도루왕을 놓고 LG와 SK가 맞대결을 벌일 수 있는 시즌 잔여 경기수는 단 3경기뿐이다. 구체적인 잔여경기 일정이 아직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모두 9월 이후에 벌어질 예정이다.

이쯤에서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남은 두 팀간의 경기가 한 팀이 일방적으로 밀리는 모양새가 아니라 끝까지 접전으로 이어져 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만 무관심 도루가 도루왕을 향한 두 선수의 발목을 잡는, 혹시라도 있을 불상사(?)를 미리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병웅 KBO 기록실장

온라인으로 받아보는 스포츠 신문, 디지털 무가지 OSEN Fun&Fun, 매일 3판 발행 ☞ 신문보기

[Copyright ⓒ 한국 최고의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www.osen.co.kr) 제보및 보도자료 osenstar@ose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OSEN

'내야의 꽃' 유격수, 하일에서 박기혁까지

기사입력 2009-02-25 07:32 기사원문보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야인시대] 왕년의 롯데 에이스, 김청수를 만나다

[엑스포츠뉴스=유진 기자]

프로스포츠나 학원스포츠에서 감독직을 수행하기도 어렵지만, 코치직에 대한 수행도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고교야구에서 전체 게임 판도를 정하고 큰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감독이지만, 선수들의 세부적인 움직임 하나 하나를 보살펴 주는 것은 코치들의 몫이다. 또한 많은 선수들을 하나하나 보살피는 것도 감독이 해야 할 일이지만, 이를 보조하는 코치들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 '야구 명문'으로 유명한 부산고등학교 전경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을 그라운드에 두고 펑고(fungo)를 쳐 주는 일, 프리배팅을 위한 공을 던져주는 일을 포함하여 제자들을 위한 '굳은 일'은 보통 감독이 아니라 코치가 직접 해 주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수들과 직접 살을 맞댈 수 있는 사람은 감독이 아니라 오히려 코치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 부산고등학교 김청수 코치는 경기 전 제자들의 상태를 일일이 점검하고 몸소 배팅 볼을 던져주거나 펑고를 쳐 주는 일을 절대 마다하지 않는 '열혈 수석코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성장 과정에 보람을 느끼며, 성적보다는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야구인이기도 하다. 특히, 14일 천우스포츠배 고교야구 선수권 대회에서 부산고가 광주일고에 4:8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1패보다는 선수들의 기량 성장에 더 큰 점수를 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렇게 제자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 김청수 수석코치를 14일 경기 후 부산고등학교 그라운드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과 현역 시절 이야기

Q : 오늘(14일) 경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단 아직까지 '선수 김청수'로서 코치님을 기억하는 팬 여러분들께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김청수(이하 '김'으로 표기) : (웃음) 저보다 야구 잘하는 선수들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기억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뿐이죠. 그리고 제가 팬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은 지금은 제가 부산고등학교에 있지만, 어디에 있건 간에 성실하고, 팬들에게 한 발짝 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좋은 선수를 만들어서 (프로에) 보내는 것이 제가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조금이라도 화답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Q : 옛날 이야기를 좀 해 보겠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에 1차 우선지명으로 프로에 입문하셨는데, 방어율을 비롯한 성적이 신인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그 당시 추억을 떠올리신다면요?

김 : 추억이라… 아무래도 좋은 추억보다는 그렇지 못한 기억이 많았죠(웃음). 제가 1989년신인 시절에 15패를 했어요. 그런데 그 중간에 0:1로 진 경기가 세 번이었고, 1:2로 진 경기도 세 번 정도였어요. 시즌 초반에 패배 숫자가 많았지만, 방어율은 2점대였죠. 이러다보니 첫 승은 7월 24일에야 가능했습니다. 결국 첫 해에 제가 7승을 했습니다(주 : 김청수 코치는 1989년, 방어율 3.38, 7승 15패 5세이브, 10완투, 210 1/3이닝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Q : 신인이 프로에서 7승을 거두기란 지금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박정현(당시 태평양 돌핀스. 1989년 신인왕) 선수만 아니었다면 신인왕도 가능하셨을 텐데?

김 : 당시 어우홍 감독님께서 저를 참 예뻐하셨어요. 그래서 1989 시즌을 앞두고 부산 KBS 프로그램에 쟁쟁한 선배님들을 제치고 제가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때문에 몇 번 NG가 났었습니다. 그 이유가 '프로에서의 각오'를 묻는 질문에 (방송 관계자들은) 저에게 '신인왕이 목표다'라는 답변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그램에는 제 생각을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 (신인왕이 목표가) 아니다. 나는 김청수라는 이름이, 우리 팀에서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되어야 신인왕이고 뭐고 할 것이 아니냐 " 고 답변을 했어요. 이 때문에 몇 번이나 NG를 냈습니다(웃음). 결국 나중에 감독님이 " 야, 이놈 고집 한 번 세네. 그냥 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Q : 현재 부산고 감독이신 김민호 감독님과도 롯데에서 한솥밥을 드시지 않으셨습니까?

김 : 맞습니다. 그때에는 감독님이 4번을 치셨고, 저는 감독님을 '형'이라고 부르면서 지냈죠. 그런데 김민호 감독님께서 제가 등판하는 날이면 으레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셨어요(웃음). 그래서 심지어는 " (김)청수 던지는 날에는 나를 (타선에서) 빼 달라 " 는 소리까지 하셨어요. 그런데 그 다음 해인 90년도에 제가 던지는 날에는 김민호 감독님이 4타수 2안타도 치면서 맹타를 휘두르기 시작하셨어요. 그러면서 " 작년(1989)에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 라고 말씀하셨지요.

에피소드라고 말하기엔 조금 민망하지만, 신인 때에는 정말로 야구하기 싫었습니다(웃음). 지금은 MBC ESPN 해설을 하고 계시지만, 허구연 당시 투수코치님이 맥주 반 잔도 못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대전 원정경기에서 밤에 저를 부르시더니, 술을 한 잔 따라주시더군요. 저는 술을 좀 하는 편이었습니다. 술을 한 잔 하시면서 (허구연) 코치님이 하시는 말씀이 " 너에게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해 줄 말은 없고, 딱 한 마디만 할게. 청수야!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참 흔한 말이지만, 지금 네 상황에서는 그것이 가장 맞는 말인 것 같다 " 라고 하시더군요. (승리 숫자에 비해 패배 숫자가 많아) 야구를 한다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제 마음을 다 잡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조언해 줄 수 있는 바탕이 되기도 합니다. '내가 힘들었을 때의 경험'을 접목시켜서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면 (제자들이) 곧잘 힘을 내지 않겠습니까?

▲ 김청수 코치는 현역시절 에피소드와 코치로서 바라보는 학생야구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냈다.

이것이 학생야구의 매력!

Q : 은퇴 이후 중학야구 감독을 거쳐 현재 고교야구 수석코치로 자리잡으셨는데, 김청수 코치님께서 생각하시는 고교야구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김 : 고교야구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실수가 많습니다. 영글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은 선수들이 많은데, 이러한 선수들이 실수 속에 성장하는 것이 고교야구의 큰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이러한 과정 속에서 보람을 찾지요. 가르치는 입장에서 '오늘 비록 못했지만, 성장하는 속도가 눈에 보일 때'에 큰 재미를 느낍니다. 그 재미로, 그 보람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엊그제(12일) 경기에서 개성고에 0:10으로 패한 것도 2루수들이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경기 이후 (2루수를 봤던) 제자들을 모아 놓고 내야 펑고를 많이 쳤어요. '실수하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려고 2시간 동안 한 1,000번은 쳤던 것 같습니다. 자식 같은 제자들인데, 안쓰럽기도 했죠. 그런데 여기서 힘들다고 중단하면 과연 그것이 득일까 실일까 싶었습니다. 나중에는 눈물까지 흘려가면서 펑고를 받아냈는데, 연습의 결과는 확실히 오늘(14일) 경기에서 드러났습니다. 2루 쪽으로 어려운 타구가 7개 정도 갔는데, 무난히 잡아서 처리했죠. 이러한 성장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이 고교야구의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Q :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오늘(14일) 경기를 100점 만점에 몇 점 주고 싶으십니까?

김 : 사실 평상시 게임을 생각해 본다면 오늘 경기에서 광주일고 상대로 4:8로 패한 경기는 40점도 채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요 근래 성장하는 속도를 봐서는 100점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눈에 띄게 야구하는 실력이 늘고, 야구하고자 하는 의욕도 증가했기 때문에 100점 만점, 아니 그 이상을 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선수들에게 하지는 않습니다(웃음). 경기 결과에 만족하여 안주하면 안 되니까요.

Q : 김민호 감독님 아들(김상현, 동국대 2학년)도 제작년에 부산고등학교 멤버로 활약하면서 부자가 나란히 한 학교에서 활약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김 : 그랬습니다. 아쉽게 프로에 못 갔지만, 이는 어깨가 좋지 않아서 그랬던 측면도 있습니다. '아버지만큼의 선수가 되었으면' 더 없이 좋겠죠.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부상으로 어깨 수술을 하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성숙한 것 같습니다. (김)상현이가 수술받는 그 날, 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아직까지 지우지 않고 있습니다. '(어깨수술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라고 보냈는데, 저 역시 '나 네가 보낸 문자 안 지웠다. 네가 성실성을 잃으면 이것을 보여 줄 것이다'라고 답변했습니다. 영원히 지우면 안 되겠죠(웃음).

Q : 다음 달이면 전국의 고등학교 야구부가 한 자리에 모이는 '황금사자기 전국대회'가 열립니다. 소속팀 부산고등학교,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의 성적을 올릴 것으로 보십니까?

김 : 작년에는 외부에서 평가하는 저희 학교 전력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우승까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결국 우승은 못 했습니다. 이것이 야구입니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같지 않아서 외부에서 저희 학교 전력을 상당히 낮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그랬듯이 외부 평가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외부에서 평가하는 것보다 최소 두 경기는 더 이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잠재력 있는 선수들이 많으니 의외의 결과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현장에서 듣는 학원스포츠의 애로사항

Q : 이번에는 조금 원론적인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현장에서 느끼는 학원스포츠의 애로사항은 무엇입니까?

김 : 아무래도 학원스포츠는 금전적인 문제가 가장 크죠.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힘들다고 봅니다. 그나마 부산고등학교는 동창회 지원이 넉넉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선수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적다고 생각합니다. 해줄 때에는 더 해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가 공부에 대한 문제입니다. 부산고등학교는 1주일에 두 번씩 (대학교) 영문학과 학생들을 불러 영어 공부를 시킵니다. 지금 몇 개월째 야간 훈련 안 하고 (영어 공부를) 시키고 있는 중입니다. 다만, 선수들도 야구 이전에 학생인데, 공부를 하지 않은 부분은 저도 지나고 보니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이 수업을 상당히 강조하십니다. 감독님께서 " 내가 수업을 들어가라고 지시하면, 무조건 들어가라. 수업을 빼먹으면, 그 때에는 야구방망이가 너희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 두 가지(금전문제, 학습문제)는 학원스포츠에서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해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Q :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후배 야구선수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김 : 저희 선수들을 포함하여 모든 선수들이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에 입문하면 누구나 스타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스타, 슈퍼스타는 그야말로 한 두명에 불과합니다. 힘들더라도 대스타가 되겠다는 꿈을 잊지 말고 거기에 맞춰 항상 노력하는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서는 마음이 흐트러져 구설수에 올라 '스포츠면'이 아닌 '사회면'에 등장하는 일부 선수들이 있는데, 저는 후배들, 제자들이 야구를 못 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를 지키는, 그런 선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후배들이) '사람다운 야구선수'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간미가 묻어나는 선수가 되어야 합니다.

※ 김청수는 누구?

마산중학교 ? 마산상업고등학교 ? 동아대학교를 거쳐 1989년 신인 1라운드 우선지명으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왕년의 에이스'다. 신인 첫 해, 38경기에 등판하여 210과 1/3이닝동안 완투 10회를 포함하여 방어율 3.38, 7승 15패 5세이브를 기록하여 당시 태평양 돌핀스의 신예 박정현과 신인왕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1990년 11승, 1991년 10승 등 롯데 마운드의 중심축이었던 그는 샌디 쿠펙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짧고 굵게' 선수시절을 마감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1994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통산 방어율 3.89, 31승 38패 8세이브, 262 탈삼진을 기록하였다. 구위에 비해 승운이 없었던 것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은퇴 이후 중학야구부 지도자를 거쳐 현재는 부산고등학교 야구부 수석코치로써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제자들을 가르치는 매력에 푹 빠졌다는 김청수 코치는 " 다음에는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 면서 제자들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숨기지 않았다.

엑스포츠뉴스 유진 기자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news@xportsnews.com ] 대한민국 최초 웹 2.0 스포츠 미디어 엑스포츠뉴스 [저작권자 ⓒ 엑스포츠뉴스 ( http://xportsnews.com )] 엑스포츠뉴스와 함께 즐기는 스포츠 UCC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TAG